헬렌은 백악관 출입기자를 하면 할수록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의 경외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다. 하지만 그 경외심은 대통령 개인이 아닌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향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대통령과 언론은 멀어져서는 안 되는 사이다. 야합하라는 뜻이 아니라 정보를 서로 교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의 대통령이 잠들어 있을 때 세계의 절반은 분쟁을 조성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데, 자는 동안 깨어 있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언론일 수 있다. UPI의 워싱턴 데스크 내부 규정에는 백악관에 일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의무조항이 명시되어 있다.’(‘백악관의 맨 앞줄에서’ 중)
헬렌이 취재한 대통령들은 모두 하나같이 역사책에 기록되길 원해서인지 그들이 행정부에서 한 일이 ‘최초’의 것이 되기를 추구했다고 한다. 최초의 중요한 법 제정, 최초의 인간 달 착륙, 최초의 예산 균형, 외부 세력과의 최초의 관계 구축 등이 그것으로 ‘역대 대통령들은 훌륭하게 또는 비열하게 그 일을 추진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은 백악관 출입기자라고 하면 대통령과 눈을 맞대며 가까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 친숙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헬렌은 “어림없는 생각”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백악관 출입기자라고 해도 기자회견 이외에는 대통령에게 여론을 알릴 자리가 없다. 따라서 백악관의 기자회견은 공개 토론회 형식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유일한 자리다. 대통령을 피고석 혹은 증인석에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을 대신해 언론매체들이 대통령의 정책을 신문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기자회견 연단에 설 때 대통령은 혼자다. 때로 자신 혹은 보좌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 들어오면 그간의 모든 예행연습은 창문 밖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럴 때 국민은 그들이 택한 사람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대통령이 얼마나 언론의 자유에 기여하는지가 증명되는가 하면, 그의 행동이 반(反)언론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헬렌은 “만일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거든 기자라는 직종에 끼어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기자에게는 철저하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백악관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역사적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헬렌은 특권을 가진 사람이다. 10명의 대통령이 경험한 승리와 실패, 영광과 몰락,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위대함에는 용기가 따라야 한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어떤 대통령은 그 도전을 이루려 했다.’(‘백악관의 맨 앞줄에서’ 중)
‘찬란한 고난’, 이 말은 토머스 제퍼슨이 대통령직을 가리켜 한 말이다. 그것은 이 나라의 최고 지위지만 한편으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자리라는 의미다. 존슨 대통령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옳은 일을 하기란 쉽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도덕적으로 옳은 일’은 매우 확실하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옳은 일’과 ‘정략적으로 옳은 일’, 그리고 그밖의 ‘옳은 일’의 숫자를 헤아리다보면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고 그러면 종종 후회에 이른다. 헬렌은 “(대통령이) 정치적으로는 인기가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결정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녀가 지난해 10월 집권 1년 차 새내기 대통령 버락 오바마에게 기고문을 통해 한 조언은 이 대목에서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대통령 전문기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혜안과 용기가 담겨 있다. 먼저 ‘소신’을 강조했다. 헬렌은 오바마 대통령의 책 제목 ‘담대한 희망’을 인용하면서 “(당신은)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줬으니 이제 담대함을 보여달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미군 증파 문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 존슨 대통령이 장군들의 조언에 경도됐다가 상황을 악화시킨 전철을 답습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소신을 가지고 펜타곤의 미군 증파 요구를 물리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루먼 대통령이 중공군 개입 이후 한국전쟁의 확전을 주장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해임한 사례를 참고하라고 충고했다.
두 번째 주문은 ‘개방’이었다. 헬렌은 “대통령, 당신은 완벽하지 않으니 완벽한 척 가장하지 말고 단점을 숨기려 하지도 말라”면서 “지금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면 솔직히 공개하고 금연의 어려움을 대중과 공유하라”고 했다. 국민의 알권리를 수호하는 언론의 눈과 귀를 가리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는 “조지 W 부시 정부와 오바마 정부는 전적으로 다르고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나 우리(기자)를 싫어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기자들을 관리하려든다”고 꼬집었다.
헬렌은 지금까지 10명의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귀로 듣고 눈으로 관찰한 결과 후보시절 선거유세에 나설 때는 하나같이 ‘(언론에) 개방된 정부’를 약속하지만 당선과 동시에 그런 약속은 내팽개쳐진다고 회고한다. 화장실에 가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르듯 말이다. 헬렌에 따르면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대통령도 진실로 언론을 좋아하지 않았다. 레이건 대통령은 기자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하느님은 그들(기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한다”고 했고, 부시 대통령은 퇴임 후, “나는 백악관에 있을 때 언론의 자유를 믿었지만 지금은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를 믿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여기자가 남자 기자와 동등한 대접을 받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애초에 남자 직업이었던 저널리스트 세계에서 여기자들은 한동안 별종 취급을 받았다. 이를테면 1908년 결성된 전국언론인클럽(National Press Club·이하 NPC)은 남자들만의 사교 클럽이자 정보교환 장소였다. 여기자 가입은 원천적으로 봉쇄돼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듣고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자들의 NPC 가입은 1956년에야 이뤄졌다. 그것도 오찬에 한해 발코니에 있을 수 있으며 반드시 남성 기자가 바래다줘야 하고 오찬이 끝나면 바로 나가야 한다는 (지금으로선 얼토당토않은) 조건이 붙어 있었다. NPC에서는 여기자를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검토하기 위해 특별 소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1971년 3월에야 24명의 여기자가 가입을 허락(?)받았다. 헬렌은 그해 12월 재정비서로 선출됐다.
NPC 진입장벽이 요새처럼 공고하던 시절, 한편에서는 여기자들만의 클럽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1919년 28명의 여기자가 창립한 ‘전국여성언론인클럽’이 그것이다. 이 클럽은 1930년대 영부인 엘리노어 루스벨트를 명예회원으로 가입시키면서 활기를 띤다. 1933년 4월3일, 루스벨트 부인은 모여 있는 여기자들에게, 금주법이 곧 폐기될 것이라는 특종을 준다. 맥주 음용이 합법화되는 즉시 백악관 식탁에 맥주가 올라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모처럼 여기자들이 영부인의 남편을 취재하는 남자 기자들보다 한발 앞서 보도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전국여성언론인클럽은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유명 인사들을 연사로 초대해 존재감을 굳혔다. 헬렌은 1959~60년에 회장직을 맡았는데, 취임식에 당시 검찰총장 윌리엄 A. 로저스와 FBI 국장 후버가 참석했다.
백악관에서 금녀의 장벽이 무너진 것은 케네디 대통령 시절이었다. 헬렌은 백악관 최초의 여기자였다. 헬렌은 ‘첫 번째’ 혹은 ‘최초의’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건을 많이 겪었다. 그렇다고 ‘첫 번째’가 그녀의 목표는 아니었다. 다만 있어야 할 때에 그 곳에 있었고, 또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주목받기 원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곳에 오래 있다보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주시할 날이 반드시 온다.”
지금 같은 변화의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서 ‘오래 있으라’는 말은 자리에 대한 연연함을 가리키기보다 일에 대한 집중력과 끈기를 일컫는 것이다.
그녀는 2006년 5월 86세의 나이로 ‘우리가 민주주의의 파수견이라고?’라는 제목의 책을 내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책 발간 직후 ‘뉴욕타임스 매거진’(5월28일자)과 한 인터뷰에서 “역대 대통령은 언론을 조작해 원하는 바를 이루려 했다”면서 “(그럼에도 매일 백악관 브리핑 룸에 앉아 있었던 것은) 오늘 돌아가는 이야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정보제공을 기피하는 것 자체가 기사”라고 꼬집기도 했다.
진보적 성향 때문이었는지 헬렌은 아들 부시 행정부 때 노골적으로 ‘왕따’를 당했다. 심지어 부시 대통령이 기자회견 때 그녀를 제외한 모든 기자에게 질문 기회를 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날 다른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헬렌은 “대통령은 겁쟁이”라며 “부시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에게는 덤벼도 나에게는 덤비지 못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헬렌은 뉴욕타임스 매거진 인터뷰 말미에 “기자에게 무례한(rude) 질문이란 없다. 기자들이 자꾸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더 어색하다”고 말했다. 기자에게 부여된 특권이 있다면 ‘질문 특권’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기자가 되길 열망하게 하는, 그럼으로써 평생 직업으로 삼게 만드는 요인이다.
기자는 각종 사건의 원인과 소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의 흥분과 성취로 인해 존재감을 느끼지만 바쁘고 힘든 직업이다. 헬렌도 “새벽 6시 반부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취재라인 뒤에서 떨고 서서 대통령 집무실에서 방금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해줄 누군가를 기다릴 때, 또는 그들을 다른 동료기자들보다 먼저 만나기 위해 밀고 당기는 억척스러운 취재경쟁을 벌일 때 (기자 일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고 전한다.
취재원들로부터 조롱을 당할 때도 있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이 임명되기 전에 파티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헬렌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통령 당선자가 당신을 국무장관으로 내정했다는 설이 있는데 사실인가요?”라고 묻자 파월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그 뒤쪽에 서 있는 사람에게 헬렌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 여자를 보낼 만한 전쟁터가 어디 없을까?”
헬렌은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헬렌은 “내가 흥미롭다고 느꼈던 것은 백악관 감시자로서의 인생보다는 권좌에 앉은 이들의 인생 스토리였다”고 말한다.
<> 참고도서
● 백악관의 맨 앞줄에서 : 헬렌의 두 번째 책으로 케네디에서 클린턴까지 8명의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들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한 정밀보고서이자 백악관 내부 관찰기록이다. 38년간 차곡차곡 취재수첩을 메운 숨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허문명 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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