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

[세기의 철녀들] ‘로마인 이야기’ 15년 투혼의 女帝 시오노 나나미 ①

발행일: 2010-09-01  /  기고자: 허문명
면종: 신동아
 


“승부 걸지 않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휴가철에 읽을 만한 책으로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를 꼽았다.

‘또 하나의…’는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제국 탄생에서부터 전성기까지의 통치철학과 제도를 새로이 정리한 책. 시오노가 평생을 로마사에 몰두하며 파고든 주제가 다름 아닌 ‘정치 리더십’이라는 점에서 박 전 대표의 추천은 흥미롭다.

시오노의 저작을 중심으로 그가 탐구한 인간학을 들여다본다.》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난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1963년에 가쿠슈인(學習院)대학(일본의 귀족 출신 자제들이 다니는 명문 교육기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마에 살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를 공부했다. 그가 공식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에 적(籍)을 두지 않고 혼자 고전 공부에 몰두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도 빠진 적이 있는 그는 “학생 때의 사회주의 운동은 한 번쯤 치러야 할 홍역이지만, 인간의 본성인 이익 추구를 부정하는 좌파사상에는 매력을 오래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한때 꿈은 외교관. 고등학교 때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1년가량 공부하면서 서양 문화에 매료됐으나 미국에서 돌아와 읽은 ‘일리아드’가 그의 인생을 바꾼다. 영어 대신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독학하면서 지중해 세계에 빠져든 것.


대학 졸업 후 ‘아사히신문’에 지원하기도 했지만 낙방한 뒤 딱히 이렇다 할 직업을 갖지 않고 있다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5년 동안 이탈리아 체류를 마치고 귀국했다가 몇 년 후 다시 건너가 이탈리아인 의사와 결혼해 피렌체에 정착했다. 집필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이 무렵부터다. 데뷔작은 1968년 ‘중앙공론(中央公論)’에 발표한 ‘르네상스의 여인들’이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1970년 첫 장편이자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마이니치(每日) 출판문화상을 받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남편과는 일찌감치 헤어지고 그 후 줄곧 아들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


 

그에게 처녀작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쓰게 한 가스야 잇키 전 ‘중앙공론’ 편집장은 시오노의 초년병 시절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30년 전 이탈리아에서 시오노씨를 만나 사흘 동안 그로부터 로마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상당히 건방졌다. 불끈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신은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 르네상스에 흥미가 있다면 ‘여자’에 대해 써보는 게 어떠냐 했더니, 왜 하필 여자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반 년 뒤 정말로 책을 써 왔다. … 많은 작가와 사귀었지만, 시오노가 가장 성장했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할 만큼 많이 컸다. 집중과 지속이라는 미덕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다. 어찌 보면 꼭 수도하는 수녀 같다. 기독교를 경유하는 역사에 도전하고, 20세기 인간의 환상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 엄청난 일을 마지막까지 뒷받침하고 싶다.”(‘로마인 이야기 길라잡이’ 중)


그의 말대로 시오노의 작업 태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일관성과 집중력이다. 조직에 매인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에라도 묶여 자기절제를 할 수 있지만 작가는 철저히 혼자다. 웬만한 인내력이 없이는 힘든 작업을 지속할 수 없다. 시오노는 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글을 쓰기 위해 서재로 건너갈 때는 마치 출근하는 사람처럼 정장을 차려입는다는 그였기에 장장 15년에 걸쳐 15권의 ‘로마인 이야기’를 써냈으리라. 그 사이 나이는 50대 중반에서 70세가 됐다. 그동안 여름휴가 한 번 안 갔다고 한다. ‘로마인 이야기’ 완간 인터뷰에서 “혹 나쁜 병이라도 발견되면 일을 중단해야 하고, 일단 중단하면 다시 시작하지 못할 것 같아 병원에도 한 번 가지 않았다”고 고백해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집요함은 번역 작업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번역을 모두 자기 돈으로 진행했다. 특정 국가가 아닌 인간 일반을 위해서 썼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고의 번역자와 감수자를 택하느라 도쿄에 집을 사려고 모아둔 돈까지 모두 썼다는 것이다.


그가 ‘로마인 이야기’를 집필한 동기는 ‘지력, 체력, 경제력, 기술력 등 모든 면에서 주변 민족보다 열세에 있던 로마가 지중해 전역을 제패하고 중근동,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대제국을 1000년 넘게 경영한 비결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바로 그 ‘의문하는 힘’이야말로 시오노에게 세상과 사람을 보는 특별한 눈을 갖게 했다.


 

시오노는 도쿄 도립학교인 히비야(日比谷)고교를 나왔다. 일본 전역에서 수재들이 모여드는 우수한 학교다. 졸업생의 3분의 2가 도쿄대에 진학하는 이 학교에서 시오노는 도쿄대를 지원했다가 낙방한다. 당시를 회고하는 시오노의 말이다.


“당시 히비야고교에서 도쿄대에 낙방한 학생들은 ‘미야코오치’(都落ち·낙향이란 뜻으로 관청에서는 좌천을 뜻함)로 불렸는데 내가 바로 미야코오치였다. 당시 교토대로 진학해 훗날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동창 도네가와 스스무(利根川進)도 미야코오치였다. 나는 모범생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에 따르면 공부를 잘하려면 첫째 기억력이 좋아야 하고, 둘째 교사가 말하는 내용에 의심을 품지 않아야 하는데 자신은 교사가 뭔가를 말하면 곧 의심을 품는 의심덩어리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사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나를 비롯해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선생님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면 다른 것들을 연상해 결국 엉뚱한 것을 생각해버린다. 자연히 선생님이 말하는 다음 이야기는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고교시절 나는 의심을 품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재가 되는 요인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의 고교시절은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왜?’ ‘어떤 조건에서?’라는 두 가지가 설명되지 않으면 수업이 끝난 뒤 꼭 질문하는 학생을 교사들이 반길 리 없다. 더군다나 그 나이에 그리스나 로마에 관심을 갖는 아이가 몇이나 됐을까. 하지만 그는 무엇에나 의심을 갖는 것, 즉 호기심을 자신의 성공요인으로 꼽는다.


“호기심이란 바꿔 말하면 자기를 개방하는 것이다. 개방적인 사람이야말로 발전 가능성이 있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찐빵 하나를 만들더라도 팥 대신 크림을 넣어보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생각이 커져 새로운 것을 자꾸 만들어낸다. 다른 데서 받는 자극이 없다는 것은 곧 무균상태, 면역성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상태에서 균이 들어오면 당장 병에 걸린다. 자극이란 독(毒)이다. 요컨대 균이다. 독이니까 해롭지 않을 정도로 계속 받아들여야 면역이 생긴다. 내가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호기심이 강하다는 정도였다. 그런 ‘긍지’같은 것이 30년 뒤의 처지를 갈라놓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네로 황제는 흔히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오노는 열일곱 살에 황제에 오른 사람(네로)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폭군 네로라는 기존의 평가를 전부 버리고 새롭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를 보게 됐다. 어떤 사상과 윤리, 도덕으로도 재단하지 않고, 인간의 행위 그 자체를 추적해가는 그의 작업은 남들과 똑같은 사료, 이미 존재하는 것을 토대로 해도 자신만의 시선이 있기에 새롭게 보이도록 하는 원천이다.

 

 


시오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뒤에도 주류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곤 한다. 이탈리아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내일 도쿄에서 유명 대학 교수들이 오니 만찬에 참석해라”고 요청했다가 곧 “교수들이 시오노와 동석하기 싫다고 했다”는 연락을 받는다거나, 누군가 출판사를 통해 마키아벨리 번역집에 발문을 써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얼마 후 “시오노의 발문은 싫다”고 했다는 얘길 듣는 일이 자주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럴 때마다 ‘두고 보자. 남보다 더 큰 성과를 내면 된다’며 작업에 매진한다고 한다.


그가 로마에 몰두하며 구축한 작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결국 ‘정치 리더십’의 문제다. 단지 로마를 소개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치를 잘못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로마사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시오노는 이 과정에서 인텔리들에게 정치를 비하하거나 경시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정치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가장 손해를 보는 집단은 서민이다. 나아가 정치는 축적된 부를 운용하고 지속시키는 작업이기에 단지 정치인에 국한되지 않고 경영자 ·언론인, 심지어 주부들까지 동참해야 하는 분야라고 강조한다.



“경제가 돈 버는 것이라면 정치는 번 돈을 잘 쓰는 것이다. 이에 비해 문화는 성공한 경제와 정치로 번 돈을 운용하는 것이다. 한 나라가 번성하는 데는 순서가 있다. 우선 경제력이 확보돼야 하고 다음은 정치 안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문화가 꽃피는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이런 단계를 밟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운이 사회에 퍼지는 것이다. 그런 기운은 위기의식에서 나오는데, 망해가는 나라는 한결같이 뛰어난 인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다.”(‘로마인 이야기 길라잡이’ 중)


그가 무엇보다 지도자에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조직이란 항상 강력한 리더가 있어야 움직인다. 기관차가 차량만 늘어놓았다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기관사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란 어떤 인물일까. 우선 ‘리스크(risk)를 지는 존재’다. 그의 말이다.


“한 시대에는 그 시대의 리스크가 있다. 지도자는 그것을 파악한다. 그리고 가능한 데까지 그것을 축소한다. 아무리 해도 처리할 수 없는 나머지 리스크는 자신이 직접 진다. 이것이 지도자가 하는 일이다.”


 

리스크를 파악하는 것과 축소하는 비결은 ‘지혜’와 ‘용기’에서 우러난다. 지도자가 리스크에 대해 가진 지혜와 용기가 크면 클수록 구성원들은 자진해서 그 리스크를 함께 지는 데 동참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한마디로 리스크를 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전쟁에 이기고도 늘 양보했다. 어제까지 적으로 맞서 싸우던 민족도 이기고 나면 언제 싸웠냐는 듯 자신들의 선진기술로 만든 무기를 건네주면서 ‘자, 이제부턴 당신들이 지켜라’, 요샛말로 방위조약을 맺었다. 적들이 자신들이 제공한 무기로 다시 공격해 들어올 리스크가 있었음에도 이렇게 포용한 것이 로마의 성공비결이다. 로마인은 무기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최첨단인 건축 기술과 인프라스트럭처 등을 비롯해 경제와 문화까지 아낌없이 피정복자에게 제공했다. 로마인들이 이긴 뒤에 양보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기지 않고 양보하면 질서가 생기지 않는다. 로마인들은 피정복민에게도 시민권을 주고 과감히 요직에 등용했다.”



“정치가는 지옥을 봐야”



 


이런 점에서 고대 로마인들이 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이었다.


“내가 로마인에 흥미를 갖는 것은 인간성에 환상을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로마인도 인간인 이상 실패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주저 없이 개혁을 단행했다. … 로마가 1000년 이상이나 계속된 것은 운이 좋아서도 아니고 자질이 특별히 우수해서도 아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직시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기개가 있었기에 번영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이 같은 현실주의적 태도야 말로 시오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두 번째 덕목이다.


“정치가는 선인(善人)이 아니다. 지옥을 봐야 한다. 정치는 결과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지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길만 말하는 사람이다. 지도자가 천국으로 가는 길밖에 모른다며 다같이 손잡고 가자고 하면, 자칫 모두를 지옥으로 이끌게 된다. 동물 세계와 마찬가지로 인간 세계도 결국 싸움터다. 일단 싸움터에 나가면, 즉 프로가 되면 ‘절대로’ 이겨야 한다. 세계에는 평화롭지 않은 나라나 지방이 많다. 그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저 평화를 외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의 생각이야말로 현실주의다. 그가 말하는 것은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싸우고 투쟁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투쟁할 경우에는 상대를 잘 알 것, 자신의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할 것, 자신의 입으로 표현할 것, 이 세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현상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볼 수 있는 능력, 상대의 속을 읽는 ‘인텔리전스’도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하지만 시오노는 리더십에 어떤 법칙이나 방정식 같은 게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좋은 자질을 타고났어도 자신의 시대와 맞아야 리더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에는 시대와 맞지 않아 스러져간 리더도 무수하다. 나는 그들에겐 그들대로 애정을 느낀다. 훌륭한 전술, 전쟁에 이기는 시스템을 찾아낸다고 해도 싸우는 방식은 적(敵)에 따라 달라진다. 전장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다만 승부를 걸지 않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

 

 

 

   ②편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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