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도 트럼프도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 "북핵 포기 안한다"
“우리는 이미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하여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왔습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언급한 이 내용은 ‘비핵화’가 아닌 사실상 핵보유국을 전제로 ‘핵동결’의사를 협상카드로 제시했다는 게 중론입니다. 이번 신년사는 그가 ‘핵 신고’ 등 진전된 제안을 내놓을 것인지에 대해 기대가 모아졌지만 다수의 미국의 북핵 관련 전문가들은 기대와는 크게 어긋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핵무기와 핵물질, 발사 운반 장치 등 미사일 프로그램 등에 대한 신고, 검증, 폐기가 비핵화의 핵심인데 이에 관한 내용은 찾을 수 없으며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상황이 달라진 게 없다는 겁니다.
김정은의 신년사로 북미대화의 가능성 높아졌다
이런 대다수 부정적 기류 속에서도 조심스럽게 진전된 내용에 주목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연구원은 “북한을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면 미국과 거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녈은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나 로버트 칼린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북한정보분석관 등의 발언들을 소개하며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협상을 재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빈 주재 핵정책 공사역할을 했던 마크 피츠패트릭은“시험, 사용, 전파를 안 하겠다는 건 많이 나온 얘기지만 ‘핵무기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을 것’이란 표현은 처음 본다. 2018년 신년사에 대량생산 운운하던 것과 대비된다. 진의를 좀 더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핵무기 생산 중단의향은 의미있는 진전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2018년 비핵화 협상, “진전 없었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미국 내 전문가들은 지난해 비핵화 협상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 지 되짚어보기로 하지요. 미국정부가 운영하는 공식 국제방송인 미국의소리(VOA)는‘워싱턴 톡’이라는 특별 대담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지난해 말 VOA는 전 상원외교위원회 전문위원 프랭크 자누지,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인 브루스 클링너 등 국내외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북미관계 전문가들을 모아 비핵화 협상 평가와 협상전략, 한미관계 등에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비핵화에 진전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대화를 요약해 옮겨봅니다. (다소 길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봐 주시면 분명 의미있는 메시지를 얻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힐 ”싱가포르 회담이후 북미관계는 진전이 없어 평가할 것도 없어요. 오히려 북중 관계만 발전했습니다.”
-자누지 ”(저도) 유해송환 외에 기억나는 게 없어요.”
-클링너 ”트럼프가 이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또 하려고 하는데 우려스럽습니다.“
=사회자 “뭐가 문제인가요”
-힐 ”트럼프가 스스로 협상가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실무급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클링너 ”북한도 트럼프와 실무진들을 떼놓고 ‘허술한’ 트럼프를 직접 상대하려고 해요. 그의 치밀하지 못한 능력을 활용해서 신중하지 못한 일방적 양보를 기대하고 있는 거죠.“
-자누지 ”북한이 비건 특별대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면도 있죠. 대사급도 아니고 상원 인준도 받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도 친 적이 없다는 거죠“
=사회자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특히 한미관계는요?
-클링너 ”미국 북한 한국 모두 의견이 다릅니다. 한국 당국자들은 습관적으로 말합니다. 미국이 더 조치를 취하라고요. 평화선언에 서명하고 제재를 줄이고 예외를 줄이고 군사훈련을 줄이라고요. 하지만 그런 방법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미국과 북한은 경찰과 범죄자의 관계입니다. 경찰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설득해. 제재와 벌을 줄여줄 테니까’라고 하는데 범죄자는 ’은행을 털지 않으면 뭘 해줄 건데’라고 말하는 격입니다.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건) 북한 책임이라는 걸 명확히 해야 합니다”
-자누지 ”전략적 인내가 필요합니다. 북한은 빨리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양보나 회담이 아니고 가끔은 영국인들이 말하는 ‘노련한 비(非) 활동(masterful inactivity)’을 펼쳐야 합니다. 연락은 유지하되 인내하는 거죠. 압박이 계속되면 북한은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고통을 안 느껴도 과거보다 도발을 줄였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됩니다. 외교가 지연되는 것과 인내하는 건 다릅니다.“
-힐 ”남북관계는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미국한텐 어려운 문제입니다. 남북한 한민족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미국이 지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걸 미국 정부는 원치 않습니다. 한미동맹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참석자들은 비핵화 협상을 잘게 쪼개라고 조언합니다)
=사회자 “성공적인 비핵화의 로드맵은 어떤 모습입니까? 북한의 핵 신고서를 먼저 받아야 하나요?”
-클링너 ”미소군축협정을 참고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고통스런 협상이었지만 해냈습니다. 핵문제를 여러 단위로 쪼개 순차적으로 하거나 분야별로 갈 수도 있습니다.”
-자누지 ”북한이 임의적으로 검증 안 된 조치를 취해놓고 보상하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엄격하고 단계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핵물질생산과 운반체계, 새로운 미북관계 조성 두 가지로 분류한 후 연관해서 집중해야 합니다.
한편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성 김 주 필리핀대사, CIA 코리아미션센터장 앤드류 김 등 한국계 미국 정부 북핵 전문가 3인은 각각 다른 비공식 좌석에서, ‘비핵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군사적 옵션으로 북의 핵 또는 북한 정권을 제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데 동의했습니다. 북한은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인정하든 안하든, 핵을 없앤다기보다 핵으로 인한 재앙을 막고 위험을 최소화하기위해 장기적인 협상을 할 것이라는 인식입니다.
북미관계는 현상유지(status quo)로, 비핵화 협상은 스몰 딜(small deal 작은 협상)로
김정은은 북핵을 한반도 주변 안보질서와 국제정치질서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적극 활용해 왔습니다. 미국을 겨냥한 위협공세에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건설을 지원할테니(돈을 줄테니) 핵을 없애자’고 반응했고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적극 추진, 김정은과 마주앉았습니다. 동북아시아 질서는 요동쳤습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급격한 변화 보다는 현상유지를 기본으로 하는 정책기조를 ‘policy of status quo‘현상유지정책)’이라 칭합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트럼프의 북핵 정책은 은근슬쩍 기조가 바뀌었습니다. “서두르지 않겠다, 시간을 갖고 해결하자”는 입장을 취하며 북핵 문제를 단기모드에서 장기 관리모드로, 일괄해결 모드에서 단계적 해결 모드로 전환시켰습니다. 구조개편에서 현상유지로 전략적 기조가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협상도 ‘빅 딜(big deal)’에서 ‘스몰 딜(small deal)’로 바뀌고 있습니다. 다단계협상을 뜻하는 ‘살라미전술,’ 몇가지 씩 묶어서 진행하자는 패키지딜(package deal), ‘단계적 협상’ 등이 비슷한 의미의 접근법들입니다. 영국 언론 로이터는 “비핵화를 위해 트럼프는 작게 생각해야 한다(To denuclearize N. Korea, Trump should think small)”는 제하의 신년사 논평을 보도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자누지 발언, 즉 ’연락은 하되 성급한 결론을 추구하지 않는 ‘노련한 비 활동(masterful inactivity)’도 미국의 정책기조가 변화해야 한다는 시각을 반영하는 접근법을 말합니다.
이에비해 김정은 신년사에서 언급한대로 좀 더 서두르는 양상입니다. 트럼프의 미국내 지지하락과 탄핵여론, 북한에 우호적인 문재인 정부의 지지하락과 한국의 경제위기 심화, 북한의 경제난 악화 등 여건을 볼 때 느긋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죠.
트럼프, 김정은도 모두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
북한 전문가로 “지금까지의 북미 협상은 진정한 비핵화 추진이 아니라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의 일시 중단일 뿐”이라는 견해를 여러 차례 밝혀온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정치학과 비핀 나랑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은 (이미) 북이 비핵화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며 트럼프 역시 여기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는 견해를 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미북간 외교적 과정이 진행되는 한 핵실험이 없을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두면서 ‘비핵화 리얼리티 쇼’가 계속 이어지도록 할 것이란 거죠.
실질직 비핵화 그 자체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테스트 중단 정도만으로도 트럼프로서는 정치적 승리를 즐기기에 충분하며 바로 이것이 ‘비핵화 리얼리티 쇼’가 이어지도록 하는 동력이라는 겁니다.
완전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트럼프와 김정은이 모두 알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은 비핵화,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로 대응하고 있는 형국이죠. 그러면서도 양측 모두 협상의 단절이나 과거로의 회귀는 원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2019년들어 김정은은 핵동결 플러스 알파(예 미국에 대한 ICBM 폐기 카드)를 협상카드로, 미국에선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제재 해제를 협상카드로 제시하면서 탐색전을 벌이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김정은 실제로는 현단계에서 트럼프가 돈 드는 안보를 싫어하는 것을 간파하고 한미군사훈련 중단, 전략자산 반입 전개 중지, 더 나아가 주한미군철수까지 얻어내려고 하고 있고 트럼프는 핵동결+ICBM폐기+보유 핵의 신고내지는 부분 폐기를 얻어내려 한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어떻든 트럼프와 김정은은 적어도 북핵에 관한 한 같은 배를 타고 정치적 공존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며 각자의 정치, 외교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빅딜 일괄 타결이 아니라 스몰딜 부분 타결을 하려고 하면서 말이지요
2019년 북미회당은 과연 열릴 수있을지, 열린다면 어떤 협의가 나올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어떻든 올해도 대한민국의 외교안보환경은 급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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