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으로서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 바첼레트에게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4년 후반 여론조사에서 인기가 급격히 상승하자 대통령후보 물망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2005년 12월11일 대통령선거에서 45.95%의 최다 득표를 하지만, 과반수 획득에 실패한다. 승리가 쉽지는 않았다. 이듬해인 2006년 1월15일 다시 결선 투표가 치러지고, 마침내 53.49%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맞는 칠레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해외의 성원도 잇따랐다. 바첼레트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 미국 국무부는 “남미의 대표적 민주주의국가에서 첫 여성대통령이 선출된 것을 축하한다”며 특별성명을 발표했고, 미국 언론들도 남다른 기대감을 표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바첼레트는 21세기형 지도자”라고 찬사를 보내면서 “바첼레트는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으로 좌파 반미 포퓰리즘을 지향하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전혀 다르다”고 했다. 그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며, 국민의 삶을 편하게 해줄 사람임을 인정했다. 미주개발은행(IDB)도 성명에서 “칠레에서 여성대통령이 선출된 것은 민주주의가 공고화하고 남녀평등이 실천되고 있다는 증표”라고 환영했다. 유럽연합(EU)의 하비에르 솔라나 외교안보 집행위원은 “바첼레트의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칠레는 안정된 민주주의, 투명한 시장경제 덕분에 일찌감치 ‘남미의 유럽’으로 불려왔다. 세계은행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한 사회가 얼마나 법치주의를 실현하고 있는지를 계량화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칠레는 100점 만점에 73점으로 중남미에서 독보적이다. 한국은 1996년 64.2점, 2006년 64.4점으로 10년 동안 제자리 걸음이다. 어쨌든 민주화의 척도를 나타내주는 법치주의로도 이미 선진국 수준이었던 칠레는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배출해냄으로써 국가의 격이 격상된 듯했다. 바첼레트 취임은 1980년대의 경제자유화, 1990년대의 정치민주화에 이어 2000년대의 문화적 개방으로까지 평가됐다.
그는 독재정권 시절에는 민주투사로 정권의 핍박받는 사람을 위해 헌신했고 민주화시대에는 남성중심사회에 도전했다. 칠레 국민의 선택은 차별은 줄이고 다양성을 높이는 사회 문화적 변화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6000달러를 넘어서면서 칠레에서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등 여성의 사회참여가 국가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또 경제성장의 그늘에서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도 대부분 여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칠레 사회가 요구하는 정치적 리더십에 가장 맞는 인물로 바첼레트가 선택된 것이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세 자녀를 둔 ‘싱글맘’이다. 두 번 이혼했고, 세 자녀 중 한 명은 미혼모 상태에서 낳았다. 칠레는 가톨릭이 지배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강하다. 게다가 남성 우월주의가 강해서 2004년에야 이혼이 합법화됐으며 2005년에야 ‘직장 내 성희롱 방지법’이 마련됐다. 지금도 여성과 남성이 투표소에서 따로 투표할 정도다. 낙태는 여전히 불법이다. 이런 사회분위기에서 바첼레트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남성 못지않은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과정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정공법이다.
바첼레트는 선거유세 때 “나는 여성인데다 이혼경력이 있고 더구나 종교를 믿지 않는 불가지론자이기 때문에 아마 여러분이 생각하는 모든 죄를 한꺼번에 안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며 자신의 단점을 감추는 대신 정면으로 당당하게 맞섰다. 유세장에서 재혼을 생각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만일 내가 남성이었다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겠죠? 사실 나는 당신이 궁금해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틈이 없어요. 지금 내 머릿속에는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앞으로 4년 동안 어떻게 열심히 일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밖에는 없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칠레 여성들의 삶은 모든 면에서 힘들지만 내가 당선되면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혜택으로 여기도록 만들겠다”며 여심(女心)을 사로잡았다. 자신이 당선되면 다수의 여성장관을 임명하고 탁아시설을 확충하는 등 여성의 권리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말이다. 실제로 바첼레트는 당선직후 남성 10명, 여성 10명의 남녀평등 내각을 구성했다.
‘그의 임기 중에 하루 2.5개꼴로 무려 3500개의 유아학교가 빈민가에 지어졌다. 소득 하위 40% 이하 가정의 0∼4세 아동은 무상급식과 무상교육을 받게 됐다. 아이들을 맡길 수 있게 된 여성들은 일자리를 갖기 시작해 실업률이 떨어졌다. 출산율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덕성여대 신은수 교수는 “칠레의 유아학교 모델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국가에서도 유아 공교육에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한다.’ (2009년 11월12일자 ‘동아일보’, 정성희 논설위원의 ‘횡설수설’ 중)
바첼레트는 “여성은 권력획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권력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남성과 다르다. 따라서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도 적을 만들기보다 서로간의 호의와 결속을 중시하게 된다. 이게 여성 정치인들의 장점”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모든 여자가 바첼레트의 말처럼 ‘호의와 결속을 중시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로 모성적 유전자가 강한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덜 호전적이고 평화를 중시한다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실제로 바첼레트가 칠레인들뿐 아니라 세계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았음에도 그 ‘한(恨)’을 이해와 사랑, 관용의 정신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다. 바첼레트는 “증오를 거꾸로 돌리는 데 내 삶을 바쳐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통령 취임 후 한 인터뷰에서 “나 역시 인생의 어느 순간 분노로 가득 찬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게 발생했던 모든 일은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이성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깊은 신념에 도달하게 해주었다. 나 스스로 증오의 생생한 체험자이기 때문에 그런 증오를 어떻게 하면 이해와 관용, 사랑으로 바꿔내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면서 “칠레의 후손들이 나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세계 정치무대에 등장한 여성정치인들 중에는 정치 지도자를 남편으로 두었다가 남편의 유고를 대신하는 과정에서 부상했거나 가문의 후광을 입은 이도 많았다. 하지만 바첼레트는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계단을 밟아 올라가며 민심을 사로잡는 정치를 펴 대통령직에 도전했고 그것을 쟁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2009년 11월에 한국을 처음 방문하기도 했다. 방한 전 한국기자들을 만나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한국을 중요한 경제파트너로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칠레는 한국의 핵심적인 파트너다. 2008년 기준 칠레의 대(對)한국 수출은 280% 늘어 36억달러를 기록했고, 한국으로부터의 수입도 31억달러나 됐다. 칠레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수입한 자동차 중 3분의 1이 한국산이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이전에 한 사람의 어머니,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의 소회를 간단하게 밝혔다.
▼ 대통령이지만 세 자녀의 어머니로서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직접 챙겨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국방부 장관 시절까지는 열심히 챙겨줬는데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24시간 내내 바빠 시간을 내기 어렵다. 그래도 휴일에는 가끔 직접 식사를 챙겨준다. 내년 3월(퇴임 시기)부터는 매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 여성적 리더십에 대한 의미와 장단점에 대해 말해달라.
“남성과 여성을 일반적으로 어떻다고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전통적으로 남성 리더십은 결과에 포커스를 맞추고 여성은 과정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어느 것이 월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혼자서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 피노체트 군사정권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고문을 당했지만 국방부 장관 시절 과거 군사정권의 인사들까지 포용한 적이 있다.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한 것인지, 과거사 청산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그 당시 일을 잊지 못한다.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모든 사회에는 충돌과 의견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런 것을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중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민주주의적 방식이 더욱 소중하다.”
<> 참고도서
●‘그녀들은 무엇이 다른가’(세계여성지도자·명인문화사)
●‘세계최고의 권력을 가진 여성들’(북공간)
●‘세계의 과거사청산 칠레편’(푸른역사)
●‘21세기 여성 정치지도자들의 이미지는 ‘잔 다르크’ 아닌 실리주의 정통 정치인’(‘주간조선’ 2006년 3월13일) 등 다수 기사
허문명 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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