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면 도전적인 질문으로 대통령을 작게 만들어야”
《90세의 현역 기자. 백악관 출입 50년. 이쯤 되면 백악관 사정을 훤히 꿰뚫어보며 대통령의 시행착오에도 별로 흥분할 것 같지 않은데, 어림없다. 헬렌 토머스는 오늘도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재판정에서 피고인을 심문하듯 대통령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퍼붓는다. “사랑받고 싶거든 기자가 되지 말라”고 말하는 그녀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으로 진정 사랑받는 기자가 되었다.》
지난해 8월4일 국내 신문들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생일에 직접 케이크를 들고 백악관 기자실에 들른 모습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날 기자실을 찾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과 생일이 같은 할머니 기자(?) 헬렌 토머스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헬렌 토머스 기자의 나이는 올해 90세. 1943년 UPI 통신사에 입사해 언론계에 첫발을 디딘 후 1960년 대통령에 당선된 존 F 케네디를 시작으로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조시 W 부시,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무려 10명의 미국 대통령을 취재해 왔으며 현재도 취재 중이다.
2000년까지 UPI 통신의 백악관 출입기자로 일하다 히스토리 채널과 휴스턴크로니클 등을 소유하고 있는 허스트 언론그룹 소속 칼럼니스트로 변신했다. 2008년 5월 위장질환으로 잠시 휴식을 가졌을 때만 해도 다들 ‘이제 헬렌 토머스도 은퇴할 때가 되었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뒤인 그해 11월 백악관 기자회견 때 브리핑 룸 맨 앞줄 한가운데 있는 자신의 ‘지정석’에 나타나 날카로운 질문으로 건재를 보여줬다. 당시 백악관 대변인이 “복귀를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자 “오바마 대통령과의 허니문은 하루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이 언론의 속성 아니겠느냐”고 진담 반 농담 반 받아치기도 했다.
2000년 백악관 출입기자직을 사임할 때 클린턴 대통령은 “많은 대통령이 백악관에 왔다 갔지만 헬렌 토머스 기자는 40여 년 동안 밤낮으로 높고 막강한 권력자들을 쩔쩔매게 하는 질문을 퍼부으며 백악관에 있어왔다”고 치하하기도 했다.
2008년 8월 미국 영화전문 채널인 ‘HBO’는 그녀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방영하기도 했다. ‘생큐 프레지던트: 백악관의 헬렌 토머스’라는 제목의 38분짜리 다큐멘터리에서 그녀는 “역사를 기록하는 기자의 진정한 목표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대통령들을 작아지게 하는 것”이라면서 “그러한 일이 불경스럽게 비칠 수도 있지만 대통령은 당연히 질문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자정신을 피력하기도 했다.
‘직업이, 아니 인생이 백악관 출입기자’로 ‘미국 대통령직의 중요한 한 부분을 맡고 있다’는 평가까지 듣는 ‘저널리스트의 살아있는 전설’ 헬렌 토머스의 삶으로 들어가보자.
그녀는 10대 초반부터 기자가 될 결심을 했다니 삶의 목표가 어릴 적에 이미 결정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호기심이 많았다. 사람들이 어린 헬렌에게 “너는 너무 호기심이 많다”고 걱정하면 “호기심이 많다는 게 도대체 뭐냐?”고 되물었던 못 말리는 소녀였다.
헬렌은 자서전 격인 ‘백악관의 맨 앞줄에서’란 책에서 기자직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의 공통된 캐릭터에 대해 언급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때 ‘그 자리에 있고 싶어하는’ 못 말리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 욕망이란 인생과 사람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그것을 밝혀내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어려서부터 글재주도 있었던지 디트로이트 이스턴 고등학교 2학년 때 영어선생님이 헬렌의 글을 높이 평가하고 학교 신문에 실어줄 정도였다. 헬렌은 그때 “마치 잉크가 내 정맥 속으로 흐르는 것 같은 희열을 느꼈고 나는 글 쓰는 일에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학교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어찌나 열심이었던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선생님들로부터 ‘오랫동안 신문사 기자로 헌신한 것에 감사하며, 1938년 1월26일’이라는 서명이 담긴 시집을 선물 받기도 했다. 대학 때도 학보사 기자가 본업이고 공부는 뒷전이었다.
헬렌은 중동 이민자 집안의 딸이다. 1920년 8월4일 아홉 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난다. 아버지 조지 토머스는 후에 레바논의 영토가 된 시리아 트리폴리에서 태어나 1892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당시 그의 나이 17세였고 무일푼이어서 친척이 있는 켄터키 주 윈체스터에서 과일, 야채, 목화, 사탕, 담배를 마차에 싣고 팔러 다니는 행상을 했다. 타고난 성실함 덕분에 미국 정착 32년 만인 1924년 7월 디트로이트의 침실 다섯칸짜리 집에 정착한다.
그의 삶의 목표는 기회의 땅 미국에서 돈을 벌어 재산을 불리고 자식들에게 대학 교육을 시키는 것이었다. 비록 자신은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문맹(文盲)이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과 교육의 중요성을 자식들에게 강조했다. 헬렌은, 글을 못 읽는 아버지를 위해 아들딸들이 성적표 점수를 읽어주면 언제나 상기된 표정으로 경청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헬렌의 아버지는 백내장 수술이 잘못되는 바람에 한쪽 눈을 실명해 고생하다 65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숨진다.
어머니는 신앙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빵이라도 한 조각 떨어뜨리면 주워서 입맞춤해 다시 먹으라고 가르쳤다. 남편이 대공황 동안에도 내내 가게를 지키며 팔다 남은 물건을 집에 가져오면 이웃들에게 나눠주었다. 헬렌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해야 한다” 혹은 “하지 말라”는 말 대신 홀로 서기를 강조했는데, 이것이야말로 헬렌이 훗날 살아가는 데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고 한다.
낯선 이국땅에서 건너온 헬렌 가족에게 인종차별은 일상다반사였다. 한때 그의 아버지는 켄터키 주 윈체스터 언덕 꼭대기에 있는 아름다운 집을 사고 싶어했는데 단지 ‘시리아인’이란 이유로 거절당한 적도 있다. 어딜 가도 헬렌 가족은 멸시와 모욕의 대상이었지만 가족의 화합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독일이 군비를 강화하면서 유럽에 전운(戰雲)이 짙게 드리워진 1938년 헬렌은 웨인 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한다. 저널리즘학과가 따로 없어서 일단 교양과목으로 수강할 수밖에 없었다. 헬렌은 자신이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제멋대로인 인습 타파주의자에, 규율 없이 행동하는 자유주의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수업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좋아했는데 나중에 기자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 때부터 막연하게 백악관 출입기자를 동경했다. 여기엔 전시(戰時)라는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그녀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유럽전선과 태평양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보며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이야말로 매력적인 출입처라고 생각했다. 1942년 여름, 대학을 졸업하자 신문사에 들어가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좀 ‘큰물’을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사촌이 시청 사회복지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워싱턴으로 가기로 한다.
헬렌은 일거리를 찾아 여러 회사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생활비가 다 떨어져갔지만 돈을 보내달라고 집에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쓰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택한 첫 직업은 해산물 레스토랑 종업원이었다. 주인은 헬렌이 웃지 않는다고 시도 때도 없이 스트레스를 주었다.
가시방석 같았던 웨이트리스 일을 이제나 저제나 그만둘까 생각하던 차에 오매불망 기다리던 신문사 취직 기회가 왔다. 워싱턴에 있는 ‘데일리 뉴스’라는 곳에서 주급 17.5달러를 받는 편집장 비서이자 사환자리였다. 편집장을 위해 커피를 타는 일도 포함됐다. 그녀의 나이 스물두 살 때였다. 당시 헬렌은 신문사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바닥 청소라도 했을 것이라고 한다.
헬렌은 속보를 알리는 벨소리가 편집국에 울리면 텔레타이프에서 기사를 잘라내 즉시 편집장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았다. 태평양전쟁과 북아프리카에서 날아오는 연합군 전투 소식들로 편집국 벨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렸다. 그러던 그녀에게 행운의 여신이 찾아온다. 남자들이 계속 전쟁에 징병되는 바람에 여기자들이 사회부 같은 험한 일에 배치되고, 그녀도 마침내 견습기자로 발탁돼 지역 뉴스를 취재하게 된 것이다.
새내기 기자 헬렌에게는 모든 일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평소 존경해마지 않던 남녀 선배 기자들이 마감시간에 쫓겨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부러웠고 인쇄기가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도 흥미로웠다. 헤드라인을 작성하는 기자들이 적당한 단어를 고르기 위해 벌이는 논쟁을 주워듣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가장 하기 싫었던 일 가운데 하나는 전쟁 희생자 명단을 적는 일이었다. 데일리 뉴스 기자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파업이 일어나는 바람에 조합원인 헬렌도 해고를 당한 것이다.
다행히 전쟁 통에 기자가 모자라던 시절이라 이내 자리가 났다. 공교롭게도 이전 직장인 ‘데일리 뉴스’와 같은 계열사인 UP에 채용됐다. 라디오 새벽 뉴스 기사를 쓰는 일이었다. 그녀의 하루는 매일 새벽 5시 반에 시작되었고 덕분에 봉급은 주당 24달러로 늘었다.
1945년 5월8일, 유럽에서 총성이 멎었다. 헬렌은 당시 뉴스 편집실에 있었는데 수천 명의 틈에 끼어 거리에서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리고 석 달 뒤인 8월15일에 일본이 전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 전쟁 기간 징집됐던 남자들이 돌아오면서 많은 여기자가 해고통보를 받았다. 헬렌은 맡은 일이 워낙 고생스러운데다 남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일이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방송매체가 부상하면서 헬렌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다. 신문과 방송의 융합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헬렌이 속한 라디오방송국 UP가 1958년 5월에 신문그룹 INS와 정식으로 합병한다. 헬렌이 일하던 UP가 UPI 통신사로 바뀌었다. 헬렌은 이곳에서 정식 기자로 일한다. 법무부, 우정국, 연방 통신위원회, 통상위원회, 보건교육 후생부를 출입하며 매일 각 부처나 관청에서 발표하는 자료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리고 2년 뒤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되자 케네디 전담 기자로서 백악관과 연을 맺는다. 당시 헬렌은 이미 누구나 인정하는 유능한 기자였지만, 나이 마흔에 시작한 일이 무려 50여 년이나 이어져 대통령을 취재하는 전문기자가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헬렌에게 맡겨진 첫 번째 일은 조지타운 N가에 살고 있는 대통령 당선자 가족을 취재하는 것이었다. 헬렌은 11월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케네디와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했다. 남자 전용 골프장에 잠입해 마치 파파라치처럼 수풀 뒤에 숨어 케네디의 모습을 취재한 뒤 ‘나는 여자 골프 스파이였다’는 제목으로 타전한 UPI 기사는 특종으로 성가를 높였다. 헬렌과 케네디의 인연은 댈러스에 간 케네디를 취재하기 위해 헬렌이 비행장으로 가던 중 차 안에서 케네디가 암살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끝이 났다.
헬렌이 10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터득한 것은 국민에게 ‘신뢰감’을 얻지 못하면 그 어떤 대통령도 통치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헬렌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어 낙마한 두 대통령으로 존슨 대통령과 닉슨 대통령을 꼽는다.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 문제로 재선을 포기했고,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下野)했다.
매우 변덕스럽고 복잡한 성격의 존슨 대통령은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보접근을 금지시키는 고약함을 보였다고 한다. 케네디가(家) 취재를 숨바꼭질에 비유한다면 존슨과의 관계는 누가 더 고집이 센지 겨루는 의지력 경쟁이었다는 것.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기자실을 그럴듯하게 마련해준 닉슨 대통령이 언론의 폭로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건 아이러니다. 포드 대통령은 아침식사를 손수 준비하는 등 소탈했으며, 대통령이 되길 결코 갈망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사람처럼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위대한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를 만큼 언변이 좋고 우호적이었다. 영화와 TV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서인지 세인의 관심을 어떻게 다룰지 아는, 본능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핵심을 찌르는가 하면 날카로운 질문에는 대충 윤곽만 이야기하거나 특유의 함박웃음을 짓고 손을 흔들며 그 장소를 떠나는 등 언론에 관한 한 달인의 경지를 보였다고 한다. 반면 클린턴 대통령은 열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냉담하게 언론을 대했다.
②편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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