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

[세기의 철녀들] 패션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 ②

발행일: 2010-01-01  /  기고자: 허문명
면종: 신동아
 


애나의 목표는 이제 물 건너간 것일까. 나락으로 떨어진 애나에게 근사한 제안이 날아든다. 1981년 봄 머독이 운영하는 계열사 ‘뉴욕’의 패션 에디터 자리였다. 이번에도 ‘뉴욕’에 모델 업계 관련 글을 기고하던 자유기고가의 도움을 받았다. 애나는 패션잡지에 입문한 이후로 ‘뉴욕’에서 가장 두터운 신뢰와 주목을 받았고 독창적이고 빈틈없는 일처리로 ‘보그’로 들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뉴욕’은 기자의 주관적 취재를 특징으로 한 보도 양식의 변혁으로 (뉴욕이라는) 특정 도시에 한정된 독자에게만 읽히는 최초의 ‘시티 매거진’이었다. 최고 수준의 보도와 글을 자랑했으나 애나가 입사할 당시에는 창간 무렵인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누렸던 명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뉴욕에서 일했던 동료의 말(‘워너비 윈투어’에서 재인용)이다.


“애나는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공격적이었고 상대보다 한발 앞서 그 사람을 압도했다. 좋은 친구를 만드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상대를 통제하고 지시하고 싶어 했다. 그것이 타인의 호감을 받는 일보다 우선순위였고 더 중요한 일이었다. (일에 관한) 모든 사소한 것이 중요했고 모든 측면이 체계적으로 돌아가야 했다. (일에 대한) 목표는 뚜렷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애나는 서른다섯 살에 결혼을 하는데 남편은 마흔여덟 살의 정신과 의사였다. 명성이 자자한 제네바 국제학교를 다녔고 런던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외과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영국왕립의학회 회원이었다. 이미 서른 살에 10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은 뒤 이혼한 처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요하네스버그에 본사가 있고 런던에 지사를 둔 기업의 회장이었다. 엄청난 재벌이었다.


남편은 정신과 의사인데다 지식인으로 애나를 정서적으로 돌볼 수 있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애나 역시 세련되고 매력적이어서 남자의 자존심과 과시욕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뉴욕타임스’에 난 짤막한 결혼기사에서 애나는 자신의 성(姓)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1983년 애나는 뉴욕에서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었다. 편집차장으로 승진했고 세련된 패션과 유행하는 인테리어부터 근사한 홈 파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화려하고 독창적인 지면을 실음으로써 뉴스와 정보 중심이던 주간지에 스타일을 추구하는 잡지라는 명성을 입혀가고 있었다.


이런 애나의 편집 방침은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한 1980년대 미국 도시에 젊은 전문가와 여피족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결과물이다. 소득이 많고 세련된 취향을 추구하며 신용카드를 즐겨 쓰는 자유분방한 소비자들(딩크족이 대표적)은 옷과 가사용품, 가구를 쇼핑하며 정신없이 소비했다. 애나는 무엇을 어디에서 사야 하는지 정보를 원하는 그들의 욕구를 정확히 짚었다. 잡지에 대한 수요가 늘자 부티크, 음식점, 가구점 등 새로운 광고주들이 몰렸고 애나의 명성도 더욱 높아졌다.


마침내 ‘보그’오너가 애나를 주목한다. 그리고 1983년 봄 그녀를 영입한다. 애나가 협상을 할 때 중점을 둔 것은 돈이 아니라 직함이었다. 그녀는 ‘크리에이티브 에디터’라는 새로운 직함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며 ‘뉴욕’연봉의 두 배인 초봉 12만5000달러, 의상 비용 등 제반 비용, 자동차와 운전기사까지 제공받는 특혜로 스카우트된다. 방 두 칸짜리 사무실을 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여졌다. 일약 패션업계의 스타로 떠오른 애나의 일과 행동, 행사장 옷차림, 함께 점심 먹은 사람, 함께 다니는 남자 등 모든 것이 뉴스와 가십 기사의 소재가 되었다.


보그에서의 초기 정착은 쉽지 않았다. 높은 연봉에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았지만 자유가 없었기에 금수갑을 찬 것 같았다. 애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의 존재를 원하도록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싸워야 했다. 직원들은 자존심 강한 애나가 사무실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어떤 땐 밤이나 낮이나 쓰던 선글라스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애나는 결혼 7개월 만에 임신을 했다. 하지만 애를 낳기 직전까지 회사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임부복 대신 짧고 몸에 딱 붙는 샤넬 스커트의 뒷부분을 살짝 열어 배에 맞도록 하고, 사무실에서 늘 정장재킷을 입어 몸의 미묘한 변화를 감추었다. 신발도 계속 앞이 뾰족하고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다녔다.


임신 중인 1985년 9월18일 애나는 영국판 보그 신임 편집장이 된다. 일단 뉴욕에서 출산을 하고 영국으로 가기로 했다. 그녀는 서른일곱에 컬렉션 일정에 맞춰 유도분만으로 아들을 낳았다.(이어 딸을 하나 더 낳는다) 그리고 약속대로 아버지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이름을 찰스라고 지었다.


영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대서양을 오가야 하는 결혼생활은 끔찍했다.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마음 한구석에선 ‘내가 미쳤어. 아들을 돌보며 편하게 살아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이제 일을 그만둬야 하나라고 생각할 즈음 기회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1985년 8월 프랑스 패션잡지 ‘엘르’ 미국 판이 나오면서 보그를 위협한다. 경영진은 조용한 공황상태에 빠진다.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편집장이 오너와 불화를 겪고 1988년 6월 해고되면서 애나가 그 자리를 잇게 된 것이다. 90년 역사의 잡지에 다섯 번째 편집장 자리, 게다가 꿈에도 그리던 자리 아닌가.


미디어들은 “완전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잡지를 이끌었던, 막강했지만 허점을 보인 편집장이 자리에서 쫓겨나고 단시간에 출세 한 미모의 여성이 올랐다. 음모론과 배후 조종론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고 떠들어댔다. 심지어 애나가 남자들과 잠자리를 한 덕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애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보그 개혁에 착수한다. 고참직원들을 해고하고, 좋은 기삿거리를 찾도록 직원들 간에 경쟁을 부추기는 한편 복장규정까지 만들어 자신이 생각하는 패션잡지 형태로 보그를 바꾸었다. 그녀는 직원을 훈련시킨다기보다 그냥 물속에 집어 던지는 사람이었다. 직원들은 그저 가라앉거나 수영을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수영을 잘하면 애나와 잘 지내는 거고 못하면 자리가 없어지는 거였다.



편집장으로 지낸 첫해는 패션계에 극심한 불황이 닥친 시기였다. 젊은 감각을 시도했지만 판매부수가 당장 급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애나가 편집장을 맡은 지 10년 만인 1998년 보그는 창간 이후 최고 수익을 올렸다.


영국 ‘가디언’지는 그녀를 이렇게 치하했다. ‘애나는 단순한 고수익 전문가가 아니다. 오늘날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며 새로운 인재를 지원하고 업계가 최신유행에 항상 민감하도록 만드는 패션계의 대모다. 혹은 세계시장에서 단독으로 1600억달러의 가치를 창출한 영화 ‘대부’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애나의 세상: 보그 편집장, 화려한 업계에서 세인의 마음을 사로잡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애나는 지난 10년 동안 신으로 섬겨진 동시에 악마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하든 간에 그녀가 보그를 패션계의 성서라 불릴 정도의 압도적인 위치에 올려놓았으며 그 과정에서 우상 같은 존재가 됐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애나는 자제력이 강하고 강인하며 두려움을 모르는 여자다. 고기를 워낙 좋아해 동물보호운동가들로부터 표적이 된 유명한 일화도 있다. 운동가들이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애나의 접시에 죽은 미국 너구리를 올려놓은 적이 있는데, 그녀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그것을 태연하게 옆으로 밀치고 잘게 썬 쇠고기를 계속 먹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생활은 쉽지 않았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삐걱거리면서 편집장을 맡은 지 11년째가 되는 1999년은 그녀의 생애 중 가장 끔찍한 해가 된다. 추문도 따라다녔다. 1997년 링컨센터에서 열린 뉴욕시티발레단 공연에서 플레이보이로 알려진 유부남 사업가 브라이언과 연애를 하면서 불륜 소문에 휩싸인 것이다. 두 사람은 어느 날 새벽 맨해튼 고급 아파트를 나서는 모습이 목격되었고 그 소문이 삽시간에 언론계에 퍼졌다. 마침내 남편까지 알아버렸다. 애나의 불륜 스캔들은 신문 가십란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해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아버지마저 세상을 뜬다.


결국 애나는 이혼을 단행한다. 두 아이를 둔 이혼녀가 되었지만 그녀의 당당한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매일 새벽 5시45분에 일어나 테니스를 치고 전문 미용사에게 머리손질을 맡긴 뒤 완벽한 스타일로 출근하는 일상은 지금도 똑같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한 올의 흐트러짐 없는 그녀만의 자기관리는 명성이 올라갈수록 신비감이 덧칠됐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혹평이나 비난의 대부분은 “성격이 더럽고 자기 맘대로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학벌로 처음부터 좋은 조직에 들어가 그 속에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고졸 학력의 어시스턴트로 출발해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해고와 실직을 반복해 이룬 그녀의 성취는 철저하게 일로 승부를 내야 한다는 차가운 프로페셔널리즘이다.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그녀가 2009년 5월26일 미국 CBS 방송의 대표적 탐사 보도 프로그램인 ‘식스티 미니츠(sixty minutes)’에 나와 한 말들은 그녀의 철학을 잘 대변해준다. 지극히 공격적이고 이기적이며 제 맘대로인 그녀의 성격은 결코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니지만, 그런 까칠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일에 대한 무서운 집중이었다는 것이 말 곳곳에 배어 있다. ‘식스티 미니츠’의 오프닝 멘트처럼 “애나는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혐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알랑거리는 아첨꾼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녀는 ‘핵 겨울’이기도 하고 독이 있는 아름다운 장미인지도 모른다.”


‘식스티 미니츠’와의 인터뷰 대목이다.


▼ 심술궂은 여자라는 평가가 있다.


그렇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게 나를 완벽주의자로 만든다면 (나는) 심술궂은 여자일지도 모르겠다.


▼ 당신과 엘리베이터를 타면 사람들이 무섭다고 하던데….


그건 처음부터 끝까지 과장이다. 아주 많은 사람이 내 밑에서 15년, 20년씩 일해왔다. 내가 그렇게 골 때리는 여자라면 아직까지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마조히스트들이겠지.


▼ 골 때리는 여자라기보다 차갑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여기는 직장이다. 근무 시간이 있으면 퇴근 시간도 있다. 우리는 잡지에 대한 열정과 서로에 대한 존경과 우정으로 모였으며, 만일 내가 차갑고 거칠다고 느껴진다면 내가 최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 완벽한 모습이 인생의 목표인가?


내게 있어 외출할 때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침에 옷장을 들여다보며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직업을 갖겠는가.


▼ (낮이나 밤이나)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는?


매우 유용하다. 패션쇼가 지겨워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고, 반대로 즐기고 있다 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선글라스는) 나의 방어막 같은 것이다.


▼ 당신 아버지도 부하 기자들이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신문을 만들어냈다.


▼ 무엇이 당신을 지겹게 하는가?


평범함이다. 디자인이 게으르고 다른 사람의 영감을 차용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나를 지겹게 하기보다는 노엽게 한다.


▼ 곧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손을 뗄 때가 오리라고 생각하는가?


전혀!


▼ 저 사무실 어딘가에서 젊은 인재가 당신 자리를 조용히 넘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두 명이 아니겠지.


▼ 그때가 오면 조용히 나갈 것인가?


물론, 아주 조용히 나갈 것이다.



<> 참고도서


● 워너비 윈투어(김은경 옮김·웅진윙스)


미국 유명인사들에 대한 평전을 전문으로 쓰는 제리 오펜하이머가 쓴 애나 윈투어 평전이다. 애나의 학창시절 친구들은 물론, 옛 애인, 직장동료들의 증언을 토대로 애나의 삶을 꼼꼼하게 재구성했다.



허문명 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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