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

[세기의 철녀들] 80세 현역 방송 진행자 바바라 월터스 ②

발행일: 2009-12-01  /  기고자: 허문명
면종: 신동아
 

유산을 거듭하며 많은 호르몬과 열정을 허비한 바버라는 입양을 결정한다. ‘나는 사람이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멋진 결혼생활, 성공적인 직업, 잘 자란 아이들, 모두를 한꺼번에 가질 수는 없다. 지금은 유연한 생각을 가진 고용주들이 (여자들이)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스마트폰인 블랙베리 덕분에 언제 어느 때나 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아빠들은 아기 기저귀도 잘 갈아준다. 하지만 지금도 (일하는 여자들의 일상은)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하기는 마찬가지이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바버라는 입양한 딸을 키우며 큰 기쁨을 얻는다. 하지만 딸이 10대가 되면서 엇나가기 시작한다. 일하는 엄마들이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먼저 자기 자신을 질책하듯 바버라도 자신을 탓했다. 딸은 열네 살이 되자 성적이 급격히 떨어졌고 귀가시간이 늦어졌으며 불량학생들과 만나 담배를 피웠다. 여러 종류의 각성제를 한꺼번에 먹고 잠이 들어 아침에 깨어나지 못해 결석하기 일쑤였다. 딸은 결국 수업료가 비싼 사립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학생이 모자라는 공립학교로 전학했다. 그러자 행실이 더 나빠졌다. 엄마인 바버라를 보기만 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두꺼운 화장에 옷차림도 제멋대로였다. 결국 규율이 엄격한 여학생 기숙학교로 보내졌지만 2주 만에 사라지고 만다. 바버라는 경찰에 신고하면 ‘바버라, 딸을 잃다’는 제목으로 보도가 될까봐 그러지도 못했다. 다행히 며칠 뒤 딸은 돌아왔다.


이번에는 딸을 청소년감호소로 보냈다. 더 엄격한 규율을 지켜야 하는 곳이었는데 딸은 여기서 LSD 같은 마약에도 손을 댔다. 결국 딸은 18세,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서야 그곳을 나왔다. 다행히 딸은 나중에 철이 들어 자신과 같이 방황하는 10대를 위한 아동심리치료사가 되어 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바버라는 딸 때문에 숱한 마음고생을 했지만 결국 딸이 자신을 많이 가르쳤다고 위안한다. ‘나는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딸이 자랑스럽다. 내 딸은 예쁘고 유쾌하고 재미있다. 내 딸은 자기 스스로 치는 북소리에 맞춰서 행진하는 사람이다. 내가 연주하는 음악이 아니지만 하기야 나도 어느 의미에서는 내 북소리에 맞춰 행진해온 사람이다. … 딸은 생모(生母)가 누군지 알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내가 생모 이야기를 꺼내면 오히려 “왜 찾아야 해요? 엄마께 드린 고통도 모자라서요?”라고 묻는다.’



인터뷰는 흥미롭고 유명한 사람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다. 또한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실생활에서 던져보지 못할 질문들을 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바버라는 자신이 인터뷰의 달인이 된 비결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첫 번째 조언은 질문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간혹 앵커가 남이 써준 질문지대로 인터뷰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엉망이 되고 만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바버라는 인터뷰를 준비할 때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카드 여러 장에 예상 질문을 가능한 한 많이 적어놓고 우편배달부이건 미용사건 붙잡고 “당신이라면 어떤 질문을 하겠느냐”고 물으면서 나머지 질문들을 지워나간다고 한다. 닉슨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앞두고는 6시간은 족히 채울 만큼 질문 100개를 만든 다음 줄여갔다고 한다.


두 번째 조언은 상대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다. 말을 가로채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녀 역시 초기에는 상대의 말을 가로막기도 했는데, 그게 가장 큰 실책이었다면서 말이다.


세 번째 조언은 인터뷰 전에 철저히 준비하라는 것이다. 특히 연예인들을 인터뷰할 때 더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언뜻 바버라 같은 명사가 인터뷰를 하자고 하면 마이클 더글러스나 줄리아 로버츠라도 곧장 달려올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고 한다. 모든 유명인사, 심지어 살인자조차 변호사와 언론담당 에이전트를 두고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송시간과 질문을 따져보고, 인터뷰로 인한 흥행효과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지까지 철저하게 계산하는 세상이다. 바버라 말대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기자가 오디션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인터뷰 한 건 성사시키는 데 몇 달씩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어떻든 인터뷰 날짜가 잡히면 기사를 모조리 찾아서 읽고 어린 시절 이야기도 파헤치고 영화도 찾아봐야 한다. 한번은 줄리아 로버츠에게 “시도 쓰시데요” 했더니 “어떻게 그걸 알았느냐”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2002년부터 2004년 사이 바버라는 ‘20/20’이란 프로그램에서 약 100명을 인터뷰했다.


‘대어(大魚)’를 낚겠다는 욕심과 내가 처음으로 (그와 혹은 그녀와)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뉴스를 만들고 스캔들을 만드는 사람이면 누구든, 새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그리고 부모나 아내 연인을 살해한 용의자면 누구든 막론하고 만나기 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뛰었다.’


누군가를 인터뷰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요즘은 기사가 너무 많은 곳에서 생산되어 기자란 직업의 가치도 하향 평준화되고 있지만 그럴수록 오랜 전통을 가진 전문적인 매체에서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으며 성장한 프로페셔널 인터뷰어에 대한 사회적 갈증이 커지고 있다.

 

 


미디어는 매력적인 만큼 거칠고 힘들다. 예측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이고 피를 말리는 순간도 많다. 프로페셔널을 지향하는 미디어 종사자들에겐 그런 순간들을 이겨내는 힘이 필요하다. 바버라 월터스에게 그 힘은 ‘불안’이었다.


‘나는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잘해서 그저 내 일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이후 20년, 30년 어쩌면 40년까지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리 내 이름이 알려지고 아무리 많은 상을 받고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나는 그 모든 것을 어느 날 다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로켓과학자처럼 명석한 사람이 아니라도 나의 이러한 불안감이 아버지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역정이나 엄마가 가졌던 끊임없는 불안감, (장애) 언니를 돌봐주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항상 오디션을 본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것은 새로 일자리를 얻는 데 필요한 오디션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남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오디션일 수도 있다. 그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동안 다양한 종류의 불안감을 안고 살았지만 그렇다고 삶에 대한 생각을 바꾼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열심히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맡은 일은 무엇이든 다 하고 일을 집에 가져갔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이게 성공의 나쁜 공식은 아니다.’


일하는 여성들이여, 불안을 즐겨라! 이게 바버라 월터스의 조언이다.



<> 참고도서


‘내 인생의 오디션’(프리뷰)=전직 언론인의 필체답게 번역본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잘 번역된 책이다. 무려 750여 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을 충실히 우리말로 옮긴 번역자의 공이 돋보인다.


‘당신도 말을 잘 할 수 있다’(임규홍 나익주 옮김·도서출판 박이정)=바버라 월터스가 직접 쓴 말하기 비법을 전하는 책이다. 모임에서부터 만남에 이르는 상세한 화술을 담았다. 


허문명 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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