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

[세기의 철녀들] 미국 대표 보수논객 앤 코울터 ①

발행일: 2009-07-01  /  기고자: 허문명
면종: 신동아
 

‘현실 속이는 판타지’ 좌시 않는 미모의 저격수

 

《한국사회만큼 이념대립이 심한 나라도 드물다. 그러나 인신공격과 막말로 얼룩진 싸움이 이념논쟁의 전형은 아니다. 미국 내 이념논쟁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미국 보수층의 ‘디바’로 불리며 말과 글을 통해 진보세력을 조목조목 신랄하게 비판해온 앤 코울터의 시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좀잠잠해지는가 싶던 우리 사회의 이념논쟁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다시 사회를 달구고 있다. 갈등과 분열의 도가 심한 만큼 통합을 갈망하는 목소리도 높다. 경계해야 할 점은 ‘싸움’ 자체에 대한 환멸이 ‘사실과 논리’에 대한 환멸로 번지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이념전쟁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사회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물질적 풍요를 어느 정도 이룬 나라들은 ‘거리에서의 싸움이 아니라 머릿속에서의 싸움’(복거일)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념논쟁이 우리 못지않게 치열한 곳이 바로 미국이다. 그 과정에서 몇몇 스타 논객도 떠올랐다. 오늘은 그중 한 사람인 앤 코울터를 소개하려고 한다.


앤 코울터는 우리에겐 낯설지만, 미국 보수계의 대표 논객이자 베스트셀러 저술가다. 1961년생이니 올해 만 48세다.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도 맨해튼에서 살고 있는 독신여성이다. 저술과 강연으로 돈을 많이 벌어 맨해튼 고급 아파트와 플로리다 별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금발의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늘씬한 몸매에 한쪽 어깨를 드러낸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타임’이 선정한 100인에 뽑혀 행사장에 나왔을 때 그녀를 지지하는 미국 보수층은 환호했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보수의 디바(Conservative Diva)’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음을 확인시켜줬다.(‘보수의 디바’는 ‘타임’이 2005년 4월25일자 미국판 커버스토리에 앤 코울터를 등장시키면서 붙인 제목이다.)


그녀는 본래 변호사였다. 코넬대와 미시간대 로스쿨을 나와 연방항소법원 판사 서기로 일하다 보수 성향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다. 1994년 폴라 존스가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상대로 성희롱 손해배상소송을 내자 존스 측 변호사를 도와 일한 것을 계기로 정치와 연(緣)을 맺는다. 1995년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을 차지하자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일하게 된다.(폴라 존스 사건: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이던 1991년에 폴라 존스란 여인한테서 고소를 당했다. 클린턴 주지사가 호텔로 자신을 끌어들인 뒤 오럴섹스를 요구하는 등 성적으로 희롱했다는 것이다. 사건이 터졌을 때는 클린턴의 바람기가 공개되는가 싶어 존스의 주장에 솔깃한 사람이 많았지만, 나중에 존스가 사건을 미끼 삼아 누드잡지에 등장해 출연료를 챙기는 등 도덕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진실성이 떨어진다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었다. 폴라 존스는 1998년 클린턴 측으로부터 85만달러의 위자료를 받고 소송을 취하했다.)



앤 코울터가 정작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MSNBC라는 케이블 채널이 새 뉴스 프로그램을 신설하면서 정치평론가로 그녀를 발탁하면서부터다. 지성미와 섹시미를 갖췄다는 평가를 들은 그녀는 특유의 냉소적이고 신랄한 말투로 이목을 끌었다. 그러던 그녀가 ‘보수의 디바’로 우뚝 서게 된 것은 펴낸 책들이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면서부터다.


1998년에 펴낸 첫 책이 ‘극악무도한 범죄와 경범죄: 빌 클린턴을 소추한다(High Crimes and Misdemeanors: The Case against Bill Clinton)’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1997년 르윈스키 스캔들을 일으킨 클린턴이 탄핵을 당하기에 충분한 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7주 연속‘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4년 뒤 2002년에는 ‘중상모략(Slander·국내 번역)’이란 책을 냈는데 역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8주간이나 지킨다. 그러나 정작 ‘뉴욕타임스’는 서평을 싣지 않았다. 저자가 ‘뉴욕타임스’를 향해 “위선과 편견으로 가득하다”고 ‘씹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미국의 정계와 언론계, 문화계가 ‘진보를 우대하는’ 진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각종 매체가 얼마나 어떻게 진실을 왜곡하고 경시하는지를 정밀한 논리와 팩트(fact)로 설파했다.


“진보주의자들은 스스로가 옳다고 병적으로 믿고 있다. 여기에 광적인 증오심까지 갖고 있다. 당신들이 진보주의자들을 빨갛게 달구어진 꼬챙이로 찔러도 그들은 당신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그들이란 미합중국의 상원의원이며 ‘뉴욕타임스’의 편집인이고 뉴스 앵커이며 TV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완전히 고삐가 풀려있다.” 짧은 인용에서 느껴지듯 그녀의 말투는 지극히 공격적이며 신랄하다. 한마디로 ‘독하다.’


 

두 책이 잇따라 성공하자 그녀는 바로 2003년 아예 진보 좌파를 ‘(나라 팔아먹는) 반역자 집단’이라고 몰아붙인 ‘반역(Treason)’이란 제목의 섬뜩한(?) 책을 낸다. “안으로부터든 밖으로부터든 미국이 공격을 받을 때 진보주의자들은 적들의 편에 선다. … 봉쇄를 해제하고, 무역제재를 풀어주고, 군대를 철수하고, 적들과 타협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미국을 해치려는 증거가 나와도 ‘증거가 없다’며 완강히 부인한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에서 무려 13주 동안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켰다.


앤 코울터는 이듬해 ‘진보파에게 어떻게 말할까(How to Talk to a Liberal)’라는 평론집을 낸 데 이어 2006년에 진보파의 반(反)종교적 성향을 비난한 ‘무신(Godless)’을 펴냄으로써 미국 보수논객의 스타로 자리매김한다.



미국 보수층이 그녀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좌파 진보주의자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 때문이다. 속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선뜻 말하지 못하는 그들의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준다는 것이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그녀의 어록이 있을 정도다. 특히 9·11테러 후 이슬람을 향한 어록이 유명하다.


“9·11테러가 난 직후 아랍 사람들이 좋아하며 거리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뉴스에 나오자 ‘저 나라들에 쳐들어가서 지도자들을 죽이고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켜야 한다’고 했고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계획에 할리우드 배우들이 반전 데모를 하자 ‘우리는 석유가 필요해서 이라크를 침공한다. 그래야 너희들이 자가용 비행기와 리무진을 타고 다닐 게 아니냐’고 쏘아붙였다.”(이상돈 ‘세계의 트렌드를 읽는 100권의 책’)


이뿐만 아니라 “무슬림이 다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테러리스트들은 다 무슬림 아닌가?” “시카고가 테러 공격을 받았으면 뉴욕 사람들은 ‘그것 참 안됐네. 이제 캘빈 클라인 패션쇼 보러 가자’고 했을 것이다” 같은 말들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조차 그녀의 독설을 피해갈 순 없다. 9·11테러로 남편을 잃은 미국 여성 4명이 국가 보상금이 적다고 항의하자 “9·11테러가 자기들에게만 일어난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했고, 이 여성들이 텔레비전과 신문에 자주 소개되자 “(그녀들이) 남편의 죽음을 즐기는 것 같다”고도 했다.


“코울터는 너무 잔인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당장 방송 출연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시청자 항의가 빗발쳤지만 그때마다 오히려 더 센 말로 응수한 ‘독한’ 그녀다. 이렇다 보니 미국 진보주의자들에게 앤 코울터는 ‘공공의 적’ 1호다. 오죽했으면 할리우드 스타 숀 펜이 화가 날 때면 코울터를 본뜬 모형 인형에 분풀이를 한다고까지 했을까. 숀 펜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영화감독인 레오 펜이 코울터가 쓴 ‘반역’의 좌파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며 그녀에 대한 증오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숀 펜은 잡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녀(인형)를 범했다. 몇 군데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있다”고 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앤 코울터는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참전용사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다닌 후 FBI수사관과 변호사를 지냈다고 한다. 앤 코울터 자신도 개신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녀는 코넬대를 다니면서 대학을 지배하는 위선적인 진보 성향에 진절머리를 내고 보수적 신념을 굳혔다고 한다. 대학에서 ‘코넬 리뷰’라는 보수 성향의 학내 간행물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미시간대 로스쿨에 다닐 때는 보수 법률가들의 모임인 ‘연방주의자협회’ 미시간지부를 창설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정치란 지저분한 스포츠’라고 단언한다. 본래부터 정치가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정치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따로 있으니 다름 아닌 좌파를 표방하는 진보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소련이라는 ‘외부의 적(敵)’이 사라지자 타도 대상을 내부로 돌리며 진실과 사실을 왜곡하고 대중을 선동한다고 비난한다.


그녀는 좌파가 기본적으로 ‘불평쟁이’라고 꼬집는다.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안보에 대한 그들의 불평은 ‘참아낼 수 없는 지경’이라고 표현한다. “좌파들이 전쟁에 기여한 바는 주로 ‘불평하는 것’이다. 그들은 테러 용의자들을 감금한 것에 대해 불평하고 우리가 전쟁에 질 것이라고 한탄하며 테러분자들에 대한 군사재판에 대해서도 비난한다. 부시 행정부가 탄저병균 살포 사건을 즉시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또 수용소 안에 구금된 테러리스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고 불만이다. 전쟁이 너무 오래 지속된다고 불평이고 존 워커(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에 생포된 미국인 탈레반 전사)에 대한 재판에 대해서도 불만이다.”(‘중상모략’ 17쪽)


좌파들의 성향을 ‘불평’이라고 지적한 대목에 눈길이 간다. 이념적으로 좌우를 가르는 기준이 많지만, 필자는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내 탓으로 생각해서 문제의 진단과 해결책을 ‘나로부터’ 찾는 것을 우파적 성향이라고 본다. 반대로 ‘남 탓’으로 생각해서 사회나 집단에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좌파적 성향이라고 본다. 문제 원인을 바깥에서 찾으면 당연히 불평불만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것은 심리적으로 ‘증오’나 ‘분노’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증오는 서로의 에너지를 갉아먹고 부식시킨다는 점에서 건강하지 못하다.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우리가 흔히 ‘사회구조’라고 하는 것은 아예 현실에 없는 추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앤 코울터가 미국 좌파들을 향해 현실 속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회라는 추상에 문제를 우겨넣고 증오심을 부추겨 사태를 왜곡한다고 하는 지적은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다.



 

 

 “좌파는 논리와는 거기가 멀다. 맹목적인 신조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원칙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기는 것만이 전부다. … (그들은) 사실이니 진실이니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이 … 권력을 위한 다툼이다. … 인신공격이야말로 진보주의자들의 정치적 논쟁 기술이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논쟁 밖으로 빠져나와 실질적 논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인신공격을 해댄다. 공화당원들의 의도를 분석하고 그들의 지적 능력을 비판하며 사생활을 파헤친다.” (‘중상모략’ 30쪽)


한편 이런 좌파들의 몽상은 “훈련되어 있지 않은 대중은 이 복잡한 세상을 혼자서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오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속물이라는 게 그녀의 진단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속물근성에 힘입어 잘 나가고 있다. 진보주의자의 세계관에서 속물근성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가를 이해할 때 비로소 그 사람들이 벌이는 몰상식하고 알아볼 수 없는 논쟁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들이 비도덕적 파괴행위를 하는 것도 속물이기 때문이며 범죄자들을 포용하고 세금감면에 반대하고 환경을 아끼는 것도 속물이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아이디어만 나타나면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막강한지 보여주기 위해 즉시 받아들인다.”


앤 코울터는 진보주의자들이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란 것도 뒤집어 보면 ‘교만’일 경우가 많다고 꼬집는다. “범죄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진보주의자들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자만심으로 한껏 부풀려준다. 그것이 진보주의자가 되는 주된 목적이다. 돈 없는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는 것 말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불행한 사람들을 동정하기를 즐긴다. 속내는 돈 없는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을 즐기는 것이다. 오직 나름대로의 규범과 도덕을 갖추고 진실을 추구하는 중산층만이 진보주의자들의 교만을 위협할 뿐이다.”(‘중상모략’ 67쪽)


앤 코울터는 자신이 논객으로 나선 이유가 바로 이런 사람들의 교만을 파헤치기 위해서라고 단언한다. 부자는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좌파적 상상력이나 사람들로부터 격리될 수 있지만, 평범한 서민은 ‘먹고사느라 바빠’ 좌파 진보주의자들의 생각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인들이 나쁜 생각을 계속 파헤치고 드러내는 게 진정한 휴머니즘이며 이타주의라고 앤 코울터는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좌파 진보주의자들이야말로 ‘신념’을 종교화한 사람이며 그들을 개종(?)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 아닌 ‘돈을 벌게 하는 것’이다. 직업을 갖고 세금을 내도록 하면 헛된 명분이나 이상주의에 빠지려야 빠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좌파 진보주의자의 이중성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 있으니 바로 흉악범에 대한 관용이다. 이들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경찰의 폭력에 대해서는 독선과 분노를 쏟아내면서 살인을 한 흉악범죄와 범죄자들에게는 무한한 관용정신을 보여준다.


   ②편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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