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

[세기의 철녀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내정자 ②

발행일: 2009-01-01  /  기고자: 허문명
면종: 신동아
 


이런 힐러리의 관대함에 대해 “독실한 감리교도로서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힐러리의 보수적 가치관이 이혼을 거부하게끔 이끌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에드워드 클라인은 “힐러리는 남편의 여성 편력을 정치적 권력의 대가로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냉소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애초 힐러리와 클린턴의 만남부터 거슬러가 살펴야 하는 뿌리 깊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즉 힐러리는 클린턴을 처음부터 성적(性的) 관계를 토대로 한 배우자가 아니라 뜻을 같이한 동지로 보았다는 것이다. 육체적인 끌림과 사랑을 기반으로 한 일반적인 연인(戀人)이나 부부 사이라기보다 만나면 사회문제에 대한 이슈를 화제로 삼으며 세미나와 토론을 하는 관계였다.


클린턴은‘여자중독’이었지만 성적인 해소는 다른 여자들과 충분히 할 수 있었으므로 힐러리와의 섹스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성스럽지 못하고 거친’ 힐러리의 태도는 클린턴에게 전혀 단점이 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바로 힐러리가 맘에 들어 하는 요소가 됐다. 당시만 해도 자신을 성적인 대상이 아니라 대화의 대상으로 인정해주는 남자는 캠퍼스에서 별로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릴 적부터 스스로를 다른 여성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여기며 자라온 힐러리 아닌가.


힐러리는 미국 내 페미니스트 1세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부터 여성의 권리에 대해 자각하긴 했지만 어차피 여자 혼자 힘으로 뭔가를 얻어낸다는 게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동물적으로 알고 있었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지적 관계로서 남편의 도움이 절대적이라는 현실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 클린턴은 적격(適格)이었다.



그러다 보니 힐러리가 클린턴과 살면서 ‘이혼’을 생각하던 때는 “사랑이 식었다” 유의 낭만적 이유가 아니라 클린턴이 야망을 잃고 낙담해 있는 경우였다. 선거에 지거나 하던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남편이 방황하고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아니, 이 잘난 내가 지지한 남자가 겨우 이 정도였나’ 하는 실망을 하면서 이혼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 힐러리가 뭇 여성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은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남편의 바람기가 만천하에 공개되면서였으니 이 역시 역설적이다.


‘모니카 르윈스키가 없었더라면 힐러리는 그저 각종 스캔들에 얼룩져 인기 없이 스러져가는 평범한 퍼스트레이디로 남았을 것이다. 정치적 미래라는 것도 물론 없었을 것이다. 이런 그녀를 하루아침에 가여운 국가적 순교자로 만든 것이 바로 르윈스키였다. 힐러리가 르윈스키 스캔들에서 구해낸 것은 남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딕 모리스 ‘콘디 대 힐러리’)


힐러리는 페미니스트였지만 정치 역정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될 때는 그 꼬리표를 과감하게 버렸다.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 첫 임기 시절 유권자는 힐러리가 남편 성(姓)을 따르지 않고 결혼 전 성을 그대로 쓰는데다 여자답지 않은 옷을 입자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나중에 클린턴이 재선에 실패하자 “힐러리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힐러리는 고민 끝에 ‘변하기로’ 결심한다. 우선 페미니스트 이미지를 벗겨내기로 한다. 1982년 남편이 주지사 선거 재출마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두꺼운 뿔테안경을 벗어던지고 콘택트렌즈를 끼고 헤어스타일도 스트레이트 파마와 밝은 염색으로 바꾸고 스타킹도 속이 비치는 것을 신고 나타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 이름을 갖고 말이 많은데) 저는 원래부터 ‘빌 클린턴’ 부인이었습니다. 변호사 일을 할 때만 ‘힐러리 로댐’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빌 클린턴 부인’으로만 살겠습니다.”


그가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부관계’를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에 대해 정치 참모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1992년 4월 말 참모들은 “(힐러리에 대해) 남성 유권자들은 급진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싫다고 하고 여성 유권자들은 권력 욕심에 남편의 여자관계를 묵인한다는 사실 때문에 싫어한다”고 직언했다. 당시 만들어진 비밀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현재 두 사람의 결혼생활과 그들 가족에 대한 평판은 부정적이고 왜곡되어 있다. 힐러리는 애정, 자녀, 가족의 의미는 별로 없어 보이고 커리어와 권력에만 몰두하는 이미지로 집중되어 있다. 그런 문제점은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조지 부시 상대편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 힐러리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덜 드러내야 한다. 드러낼 때는 남편과 딸에 대한 애정 등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한다.’


결국 사생활을 조작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이 보고서는 대부분 채택되었다. 힐러리의 이런 전략적 사고는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졌을 때 절정에 달한다.


자서전 ‘살아 있는 역사’를 통해 ‘1998년 8월15일 아침에 남편이 침실에서 자신을 깨우고는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시인했다. 나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간신히 숨을 진정시키고 나서 울음을 터뜨리며 그에게 소리를 질러댔다’고 말했던 대목은 유명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사실을 알고 대책반을 꾸려 이끌고 있었으며 클린턴의 법정증언 준비회의도 주재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그녀는 르윈스키 스캔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 사전에는 없었던 ‘희생자’라는 말을 새로 끼워 넣기로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잘난 여자’가 아니라 남편에게 감정적으로 학대받는 아내가 동정심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힐러리가 자신들을 깔보고 있으며 가정을 중시하는 자신들의 가치관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평범한 여자들은 힐러리도 역시 남편이나 자신의 운명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희생자로 동일시하면서 우군으로 받아들였다. 4년 동안 무대에서 사라졌던 힐러리의 인기를 회복시킨 것은 이처럼 존경이 아니라 동정이었고 인간으로서의 심오함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품위에 대한 인정이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세상에서 가장 큰 모욕을 받은 아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회 외교통일통상위원장인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자타 공인 ‘외교통’이다. 청와대 해외공보비서관으로도 활약했던 그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때 통역을 맡으면서 힐러리와 인사를 나눈 뒤 숱한 국제회의에서 만나면서 교분을 이어왔다고 한다. 박 의원은 최근 힐러리 내정자에 대해 이렇게 코멘트했다.


“치밀한 성격과 승부욕까지 가진 지도자다. 핵심을 찔러 말하는 사람이다. 그와 외교적 대화를 나눌 때 애매한 표현은 금물이다. 우리가 뭘 원하는지 우선순위와 분명한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


외교적 수사가 느껴지는 단어가 많지만 한마디로 힐러리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서두(序頭)에 소개한 이상돈 교수는 아예 “힐러리가 국무장관을 맡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오바마가)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임명한 것은 그녀가 2012년 대선후보로 나올 것을 막기 위한 사전 포석(布石)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떻든 이 글의 목적은 북한이라는 체제와 이념이 다른 동족과 대치 중인 특수한 환경에서 우리와 무관치 않은 사람이 된 힐러리의 여러 면모를 살펴보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힐러리를 둘러싼 신화만 너무 많이 소개되어 균형감각을 잡아보자는 의도였다. 글을 시작하며 ‘악녀인가’라는 말을 던졌지만 ‘악녀’가 나쁜 게 아니다.


적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힘든 세상에서 뭔가를 성취해내려면 지지자들보다는 반대자들의 저항을 물리쳐 나가는 게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타인을 통제하고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나가기 위해 때로는 거짓과 위선조차 일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은 야망과 성취만을 이야기하지 그 과정에서 당사자가 치러야 할 대가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힐러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온 위기들을 헤쳐나가고 오늘의 성취가 있기까지 겉으로 보이는 완벽한 이미지와는 달리 숱한 실수와 비난이 있었다. 힐러리의 스타일은 옳다 그르다를 떠나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 세상일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이 ‘여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마지막으로 힐러리가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인생살이의 지침은 다음과 같다.


‘시련이 닥치더라도 살아남아라. 절대로 희생자가 되지 말라. 누가 너를 때리면 그 사람을 더 세게 쳐주어라.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라.’



야망을 성취하려는 사람들은 힐러리의 위기 돌파법을 배워야 한다.


힐러리의 성공은 항상 남편과 함께였다.

 

 


<> 참고도서


힐러리의 진실(에드워드 클라인 지음, 서영조 옮김, 행간)

나는 이기기 위해 존재한다(딕 모리스 지음, 손지애 박소정 옮김, 리더스북)

세계 최고의 여자 힐러리論(길 트로이 지음, 정성희 옮김, 늘봄)

살아 있는 역사 1, 2(힐러리 로댐 클린턴 지음, 김석희 옮김, 웅진씽크빅) 


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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