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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 1948년 日 A급 전범 도조 처형

발행일: 2005-12-23  /  기고자: 허문명
면종: 오피니언·인물
 

1948년 12월 23일 이른 아침, 일본의 A급 전범 도조 히데키(1884∼1948)를 비롯한 7명이 도쿄 스가모 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진주만 공습으로 침략전쟁을 주도했고 미국(필리핀) 영국(홍콩) 프랑스(인도차이나) 네덜란드(인도네시아) 영토를 침략했으며 전쟁포로를 학대 처형했다는 죄목이었다. 도조는 1940년에 육군대신이 되어 중국 침략의 확대를 주장하면서 고노에 내각을 무너뜨렸다. 이듬해 총리가 된 그는 육군·내무대신까지 겸임하면서 진주만 기습 공격을 지휘해 결국 자신의 조국을 패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식민지 한국에서 징병제와 학도병 지원제를 실시한 인물도 그였다.


전쟁을 조직적인 약탈, 살상, 파괴 행위라 하여 범죄로 규정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이지만 실제로 단죄가 이루어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과 도쿄 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부터였다. 1946년 5월 3일 처음 열린 도쿄 재판은 2년 반 동안의 심리 끝에 A급 전범자 25명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20세기에 전범으로 기소된 국가지도자는 도조를 포함해 1990년대 르완다 학살의 장본인 장 캄반다,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2000년대 사담 후세인이 있다.


전범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범죄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 히틀러의 오른팔 헤르만 괴링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전쟁의 승자는 재판관이 되고, 패자는 피고석에 선다”며 승자들이 정의라고 포장해 꾸미는 각본이라고 말했다. 괴링은 교수형을 선고받은 날 밤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 도조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 또한 자신의 범죄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陀)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라는 시를 유언으로 남겼다.


전범 재판은 침략전쟁의 책임을 ‘개인’에게 물으려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정치적 의미를 걷어내고 보면, 절대군주처럼 군림하던 최고 권력자가 하루아침에 난파해 초라한 죄인으로 추락하는 권력의 무상함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다.


2003년 12월 13일 고향 티크리트 농가 지하에서 체포돼 치과 검사를 받으면서 의사의 지시에 따라 양순하게 입을 이리저리 벌리던 후세인의 표정에서는 연민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것은 ‘패배와 추락’을 설명하는 온갖 언어를 한 순간에 무화하는 한 편의 처절한 이미지였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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