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

[책갈피 속의 오늘] 1989년 동화은행 출범

발행일: 2005-09-05  /  기고자: 허문명
면종: 오피니언·인물
 

1989년 9월 5일 동화은행이 문을 연다. 이북5도민회가 출자한 실향민 은행을 표방한 이 은행은 개인 117만3849명에 단체 1561개를 망라한 거대한 규모의 주주로 구성됐다. 개점 5년 만인 1994년 전국 주요 도시에 81개 점포를 낼 정도로 성장했지만 생명은 길지 않았다. 채 10년도 되기 전인 1998년 6월 말 퇴출당했다. 동화은행의 몰락은 여론을 무시하고 설립을 강행한 정부와 무능한 경영진 모두의 책임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 은행을 포함해 대동 동남 등 당시 함께 출범한 이른바 ‘3D은행’은 모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선거 공약에 따라 여론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설립이 결정되었다.


출범 때부터 ‘정치적 사생아’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지방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세워졌지만 많은 금융 전문가들은 세 은행에 대한 무분별한 허가가 은행 전체의 부실을 심화시킨다고 반대했다. 우려대로 이 세 은행은 처음부터 허덕댔다. 대구와 부산에 근거를 둔 대동, 동남에 비해 서울에 근거를 둔 동화은행이 더 어려웠다.


상황이 어려워지다 보면 무리수가 나오기 마련. 동화은행은 기존 대형 은행들을 단숨에 따라잡겠다는 욕심으로 대출 심사에 신중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자금’ 사건까지 터졌다. 1993년 은행장이던 안영모 씨가 대출 커미션과 영수증 조작 등으로 50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뿌린 혐의로 구속됐다. 신설 은행이 부패 정치인과 관료에게 ‘돈줄’ 구실을 했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놀랐다. 1995년에는 노 전 대통령마저 자신의 비자금 1000억 원을 예치해 자기가 설립을 허가한 은행을 사금고로 이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두 사건 이후 은행 이미지는 추락해 예금 이탈 사태가 이어지면서 은행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다. 동화은행은 인가권자였던 재무부 공무원이 출범 이후 19명이나 ‘낙하산 입성’해 대표적인 ‘관치은행’으로 불렸고 한 해 1000여억 원이 넘는 적자 속에서도 급여가 대형 시중은행보다 20%가량 많았다.


은행이 퇴출된 지 만 6년째이던 지난해 6월, 본보가 229명의 동화은행 퇴직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당시 중산층이던 직원 5명 중 1명은 빈곤층으로 추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인-관료-경영진-직원-주주들의 ‘총체적 배임행위’의 합작품이었던 동화은행의 몰락으로 직격탄을 맞은 사람들은 결국 넥타이 부대였던 셈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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