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

[책갈피 속의 오늘] 1996년 가수 김광석 사망

발행일: 2005-01-06  /  기고자: 허문명
면종: 오피니언·인물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처음 보내드린 곡이 ‘서른 즈음에’였습니다. 누구나 나이에 대한 무게를 감당해 내며 지냅니다. 10대 때는 거울처럼 지내지요. 비춰 보고 흉내 내고. 20대는 유리처럼 지냅니다. 뭔가 찾으려고 좌충우돌하지만 자존심은 있어서 자극이 오면 튕겨 내든가 깨어지든가 합니다. 그럴수록 아픔이 생겨나고 또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면 더 아프기 싫어 조금씩 비켜 나가죠. 포기하고 인정하다 보면 나이에 ‘ㄴ’자가 붙습니다. 서른이지요. 뭐 그때쯤 되면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게 됩니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도 더 이상 재밌거나 신기하지 않습니다.”


가수 김광석의 생전 콘서트 한 장면이다. 소탈하고 진솔한 흡인력과 인간미로 ‘1000회 콘서트’를 했던 그는 생전에 무대 위에서 보여 준 혼잣말 같았던 읊조림 그대로 혼자가 되어 이승을 떠났다. 1996년 1월 6일 새벽의 일이다.


파안(破顔)의 미소가 근사했고 술과 친구를 좋아했던 김광석. 화려하지도 않았고 TV 같은 주류 무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언더그라운드였지만, 그는 한 시대의 걸출한 가객이었다.


그의 노래엔 증오나 미움, 분노가 없었다. 대신 삶의 작은 것들을 사랑하고 아파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 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 보는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마지막 4집 앨범에 실린 ‘일어나’는 그가 “힘든 일이 날 가라앉게 만들 때, 밑바닥까지 가라앉으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만든 노래”라고 했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 오늘 저녁엔 노래방에 가서 그의 노래라도 실컷 불러 보자. 짧은 생이나마 치열했던 한 청춘을 추모하며, 지난해 힘들었던 우리 삶이 밑바닥을 박차고 수면 위로 치고 올라 올 수 있기를 다같이 빌어보자.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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