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장가에 나타난 韓美日원혼 ‘귀신 3국지’- 어느 나라 귀신이 더 무서울까

발행일: 2006-06-22  /  기고자: 허문명
면종: 문화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근 공포영화를 관통하는 화두는 ‘원혼(寃魂)’이다. 일본 공포영화 ‘링’과 ‘주온’ 등이 미국 할리우드에서 잇따라 리메이크돼 흥행에 성공하면서, 그간 칼을 휘두르는 살인마의 모습을 담은 이른바 ‘슬래셔 무비’에 경도돼 있던 할리우드는 ‘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혼령’인 원혼 혹은 귀신이라는 매혹적인 대상에 눈을 돌리고 있다. 동양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제작된 한국 미국 일본의 공포영화를 소개한다.》


■죽음은 온라인을 타고 다가온다… ‘아랑’-한국

 

28일 개봉되는 ‘아랑’은 과거 우리의 심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공포영화들의 장면 장면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만든다. 온라인(홈페이지)을 통해 죽음이 전파된다는 설정, 성폭행을 당하고 죽은 여성의 원혼, 그리고 카메라에만 찍히는 귀신의 모습과 같은 요소들은 ‘착신아리’나 ‘폰’, ‘셔터’를 생각나게 한다. 원혼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방법(눈매나 손톱을 보여주는 것 같은)에선 ‘링’의 기시감마저 든다. 여형사가 사건 해결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에 얽힌 정신적 외상(트라우마)과 마주한다는 점에선 ‘양들의 침묵’과도 닮았다.


세 남자가 연쇄적으로 죽는다. 여형사 소영(송윤아)은 이들이 친구 사이라는 점과 함께 이들 모두 민정이라는 소녀의 홈페이지를 보다가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소영은 과학수사반 출신의 신참 형사 현기(이동욱)와 함께 사건 해결에 나서지만, 유력한 용의자였던 의사 동민(이종수)마저 죽음을 맞자 당황한다. 소영은 홈페이지의 주인공인 민정이 10년 전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독창성이 부족하지만, ‘아랑’은 이런 익숙한 조각들을 비교적 충실하게 조합해 공포영화의 정도를 밟아 나간다.


‘아랑’의 결정적인 문제는 캐릭터의 두께가 너무 얇다는 점에 있다. ‘소영’은 여형사라기보다는 ‘송윤아’로 보이고 ‘현기’는 신참임에도 처음부터 필요 이상 진지하다. 그들이 가진 캐릭터의 색깔은 수많은 사연 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더 강화되기보다 오히려 희미해져 버린 현상이다. 결국 소영과 현기의 파트너십은 어떤 인간적인 단계로 충분히 발전되지 못한 채 반전을 맞기에, 반전은 설득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파가 약할 수밖에 없다. 안상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살고 싶으면 이 메시지를 전송해…‘착신아리 파이널’-일본

 

일본공포영화 ‘착신아리’의 성공 요인은 두 가지에 있었다. 하나는 젊은이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휴대전화를 원혼과 죽음이 퍼지는 매개물로 삼아 ‘일상의 공포’를 자극했다는 점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하고도 창의적인 죽음의 비주얼이 심장을 멎게 할 만큼 강력했다는 점이다. ‘착신아리’의 두 번째 속편이자 시리즈 완결편인 ‘착신아리 파이널’이 22일 개봉된다

부산으로 수학여행을 온 일본 고등학교 학생들, 특히 여학생 에미리(구로키 메이사)는 한국인 친구인 진우(장근석)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부푼다. 그런데 누군가의 휴대전화에 “전송하면 죽지 않아”라는 정체불명의 문자메시지가 전해진다. 메시지를 받은 학생들은 여지없이 죽음을 당한다.


한일 합작으로 만들어진 이번 완결편은 ‘왕따’ 문제를 들고 나오는 동시에 클라이맥스에 한국과 일본의 누리꾼들이 일제히 나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적 메시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게다가 ‘나에게 온 죽음의 메시지를 친구에게 전송하면 나는 살 수 있다’는 설정을 추가해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경쟁 지상주의 학교생활에 대한 비판적 은유까지 보탰다.


하지만 여러 겹으로 쌓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중대한 문제점 하나를 안고 있다. 바로 하나도 무섭지가 않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왜 죽는가’에만 치중한 나머지 ‘어떻게 죽는가’라는, 진짜 중요한 문제에는 소홀하다. 죽음을 맞아야 하는 까닭과 죽음의 배후를 초반에 모두 공개해 버린 상태에서 이 영화의 승부처는 결국 ‘어떻게 죽이느냐’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영화는 죽음을 분 단위로 무슨 공산품처럼 쏟아내면서도 소름 돋을 만한 단 한 번의 장면도 보여주지 못한다.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다정한 그가 죽은사람이라니… ‘하프 라이트’-미국

 

“아이의 혼령이 옆에 있어요. 구천을 떠돌며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요.”

영화 ‘하프 라이트(Half Light)’에서 주인공 레이첼(데미 무어)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처녀의 이 말은 도무지 서양영화 속 대사 같지 않다. ‘떠나지 못하는 혼령’의 존재란 다분히 동양적 사고에서 비롯된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선 이야기의 고비고비마다 인과응보나 한(恨) 같은 동양적 상상력에서 비롯된 계기와 사건들이 구슬을 꿰는 실 역할을 한다. 삶과 죽음의 모호함을 뜻하는 제목 ‘하프 라이트’란 말 역시 동양적 정서의 차용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레이첼은 집필 때문에 아들을 챙기지 못하던 중 그만 아들이 집 앞 물가에서 익사하는 사고를 당한다. 죄책감에 집필도 못하고 남편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지자 레이첼은 요양 삼아 외딴 섬으로 떠난다. 바닷가 아름다운 자연에 마음을 기댄 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그녀 앞에 등대지기 앵거스가 나타난다. 레이첼은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앵거스에게 점점 마음을 여는데….


영화는 아름다운 로맨스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마을 축제에서 앵거스를 기다리던 레이첼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앵거스는 이미 7년 전에 죽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공포와 스릴러로 치닫는다. 아들의 환영에 시달리던 그녀는 어렵게 사랑을 시작한 앵거스가 또 다른 환영이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지만,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그녀가 “미쳤다”고 수군댄다.


크레이그 로젠버그 감독은 과대망상으로 오인 받는 주인공의 상황이라는 전통적인 스릴러 문법에 동양적 공포 소재인 물과 거울, 그리고 죽은 자의 영혼의 이미지를 혼합시켰다. 그는 할리우드 리메이크 버전 ‘장화, 홍련’의 각색가이기도 하다. 29일 개봉, 15세 이상.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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