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 난 무덤속에서 비로소 자유롭다 '마크 트웨인 자서전'

발행일: 2005-02-19  /  기고자: 허문명
면종: 문화
 

◇ 마크 트웨인 자서전/마크 트웨인 지음·찰스 네이더 엮음·안기순 옮김/512쪽·2만2800원· 고즈윈


어린 시절, ‘왕자와 거지’ ‘허클베리핀의 모험’ 같은 마크 트웨인의 소설이나 만화를 각색한 영화를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어릴 적 받은 인상이 강해 마크 트웨인 하면, 동화작가라는 느낌이 들지만, 사실 그는 19세기 영미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성인소설의 대가다. 예를 들어, 같은 날 같은 얼굴로 태어난 아이의 운명이 엇갈리는 ‘왕자와 거지’는 16세기 런던 풍경과 엘리자베스 여왕, 제인 그레이, 헨리 8세 등 실존 인물들을 꼼꼼히 챙겨 역사소설 못지않은 유장함이 배어 있다. 이 작품은 또 신분의 역전을 통해 16세기 런던의 보수성을 꼬집은 현실비판 소설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마크 트웨인 자서전은 해학과 풍자, 그 속에 감춰진 삶의 비의라는 마크 트웨인 소설 문학의 정수가 어떻게 형성되고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 필명인 마크 트웨인은 미시시피 강의 깊이를 재는 단위라고 한다. 대작가의 이름이 강 깊이를 재는 단위였다니. 마크 트웨인은 이처럼 제도나 사회가 만들어 낸 갖가지 ‘대단함’의 허울을 벗겨내고 바야흐로 삶은 그렇게 가벼운 것도 무거운 것도 아닌, 그래서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는, 그래서 기쁘기도 하지만 ‘결국 슬픈 것’임을 자서전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먹을 것을 위해 일하고 땀 흘리고 고군분투한다. 그러면서 슬슬 나이를 먹기 시작하고 질병이 뒤따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고 삶의 즐거움은 고통 받는 슬픔으로 바뀐다. …마침내 야망이 죽고 만다. 자존심이 사라진다. 허영이 무너진다. 그리고는 드디어 세상이 부여한 것 중에서 유일하게 독성이 없는 선물을 받는 순간에 도달하면서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의 자서전은 여러 면에서 특이하다. 30대 후반부터 자서전 성격의 글을 조금씩 써 나갔던 그는 42세 되던 1877년 정식으로 집필에 착수할 것을 결심해 직접 타이프를 치기도 하고 구술하기도 하면서 방대한 원고를 남겼다. 전제 조건은 사후 출간. ‘무덤에서라야 자유롭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전제를 단 그의 원고는 죽은 후 세 명의 편집자가 나서서 원고를 엮었는데 이번에 나온 찰스 네이더판 자서전이 영미권에서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서전에는 소설로는 접할 수 없는 인간 마크 트웨인, 작가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이었고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그의 모습이 여과 없이 담겨 있다.


그는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 중에서 나만큼 무수하게 사기를 당한 인물도 없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여러 사람에게서 사기를 당하거나 피해를 보았는데, 자신을 속인 사람들에 대해 신랄하리만큼 솔직한 심정을 토해 놓았다. 또 자신과 같은 위대한 작가를 빼고 학위를 주는 미국 대학교들을 비판하는 대목에선 작가로서의 자부심 한쪽에 도사린 아웃사이더로서의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마음에 안 드는 세상’에 대한 감정 섞인 비판에서 벗어나 인간심리의 일반적 속성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가로서의 면모도 보여 주었다.


‘때로 타고난 살인자나 악당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에게 온갖 비난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의 본성의 법칙에 복종했을 뿐이다. …인간 종족은 무자비한 말과 쓰디쓴 비난을 받기에 적절한 표적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에게 적합한 가장 정당한 감정은 동정이라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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