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랑말랑한 힘/함민복 지음/132쪽·6000원·문학세계사
10년 전, 도시를 떠나 강화도 바닷가 마을에 둥지를 튼 함민복 시인(43)이 펴낸 네 번째 시집이다. 세 번째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이후 10년 만이다. 제목 ‘말랑말랑한 힘’은 시 ‘뻘’에서 따온 것이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말랑말랑한 힘/말랑말랑한 힘’(‘뻘’ 전문).
강화도 생활의 온전한 시적 보고서와도 같은 이번 시집에서 그는 시골생활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갯벌의 촉감이 전해주는 ‘말랑말랑한 힘’이란 한 마디로 표현했다. 이 촉각적인 언어는 ‘길이 길을 넘어가는 육교 바닥도/척척 접히는 계단 길 에스컬레이터도/아파트 난간도, 버스 손잡이도, 컴퓨터 자판도/빵을 찍는 포크처럼 딱딱하다’(‘감촉여행’ 중)고 표현한 것처럼 도시공간의 차가움이나 건조함이 빚어내는 딱딱함과는 정반대의 표현이다.
갯벌의 수평적 시선과 부드러운 촉감은 수직으로 치솟는 도시의 고층빌딩과는 다르다. 그리하여 시인은 ‘부드러움 속엔 집들이 참 많기도 하지/집들이 다 구멍이네/구멍에서 태어난 물들/모여 만든 집들도 다 구멍이네/(중략)/딱딱한 놈들도 부드러운 놈들도/제 몸보다 높은 곳에 집을 지은 놈 하나 없네’(‘뻘 밭’ 중)라고 노래하며, 여기서 더 나아가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쉽게 만들 것은/아무것도 없다는/물컹물컹한 말씀이다’(‘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중)라며 인간문명의 오류를 꾸짖는 언어들로 이어진다.
강화로 이사한 뒤 처음에는 시골생활의 갑갑함을 이기지 못해 하루 종일 뻘밭을 걸어다니거나 산에 올랐다. 뻘밭에서 소라 댓 마리를 잡아다가 술안주와 한 끼 반찬으로 삼기도 했고,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겨울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며 시간을 죽이기도 했다. 이방인 함민복은 이렇게 서서히 강화도 사람이 되면서 개펄의 부드러운 속삭임과 힘을 조용히 체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강화에 정착한 뒤 눈만 뜨면 보이는 개펄에서 시인은 문명에 대한 성찰과 그에 대한 반성으로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시적 서정을 길어 올렸다.
시인은 전등사 근처 동막리에 있는 폐가를 고쳐 살면서 한 달 담뱃값도 안 되는 월세 10만 원을 내며 텃밭까지 모두 300평을 얻어 살고 있다.
‘삐뚤삐뚤/날면서도/꽃송이 찾아 앉는/나비를 보아라//마음아’(‘나를 위로하며’ 전문)라거나 ‘여자 몸속에 아이 하나 못 심고/사십이 다 되어 홀로 돌아와/살아 온 길 잠시 벗어 보네//낯선 고향에서 쉬이 잠 오지 않네’(‘귀향’ 중)라고 읊은 시편에는 사무치는 외로움과 슬픔이 배어 있다. 물질문명의 탐욕으로 병들어 가는 이 시대에 함민복의 가난과 고독과 눈물은 시인 박형준의 말대로 ‘딱딱한 모든 것을 물렁물렁한 뻘길로 바꾸고, 진득진득한 힘으로 생명의 신발이 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책의 향기 / 경제성장 南-안보위협 北… 외국인들이 보는 한반도 | 2010-03-20 |
그 시절 그 풍경 추억이 방울방울… 임정빈 교수 ‘검정고무신…’ 출간 | 2006-10-27 |
책의 향기 / 진득진득한 생명의 힘 '말랑말랑한 힘' | 2005-01-29 |
책의 향기 / 부조리한 삶...답답하고 슬픈 인생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 2005-01-22 |
책의 향기 / 작가 서영은의 문학인생 고백 '일곱 빛깔의 위안' | 2005-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