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이방인 두 사람이 본 한국-한국 사람…이상한 나라, 유쾌한 나라

발행일: 2002-04-20  /  기고자: 허문명
면종: 문화
 

《한국에 살고있는 미국인 두사람이 동시에 책을 냈습니다. 한 사람은 다소 삐딱하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또 다른 한 사람은 ‘예찬’의 시선으로 한국을 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글을 읽다보면 우리가 바로 세계 속에서 살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월드컵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의 눈으로 본 한국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떨까요. 》


◇ 발칙한 한국학/J. 스콧 버거슨 지음 주윤정·최세희 옮김/352쪽 1만원 이끌리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의 하나이지만 사람들은 열렬히 새 것을 숭배한다. 출고한 지 5년이 지난 차는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없고 전통한옥에 사는 사람들도 흔치 않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유교적인 사회여서 노인에 대한 공경이 사회의 공식적인 규범이라지만 실상은 전혀 딴판이다. 패션, 엔터테인먼트, 출판, 레스토랑, 여가산업 등은 거의 전부 젊은 층을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30줄을 넘기면 즐거운 생활에는 안녕을 고해야 하고 사회는 이제 그들에게 관심을 뚝 끊어 버린다.’

 

한국 사회에 대한 단면을 재기발랄하지만 삐딱하게 꼬집고 있는 이 주인공은 미국인 스콧 버거슨씨(37). 아마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 지하도나 인사동 골목을 자주 다니는 사람은 한번쯤 이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영문잡지 ‘버그(BUG)’와 3년전 펴 낸 한국 문화 에세이집 ‘맥시멈 코리아’(Maximum Korea)’(자작나무)를 거리에 펼쳐 놓고 파는 이른바 ‘거리의 문화 비평가’다.


미국 버클리대를 졸업한 뒤 지구촌을 떠돌며 문화 기행을 하는 이 젊은이는 드라큘라 백작의 고향이 보고 싶어 루마니아를 찾아 갔고 독일 베를린에서 1년간 지냈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 잡지에 글 쓰는 평론가 일을 하다 다시 영국행, 그후 호주와 일본 등지를 떠돌다 96년 9월 서울에 왔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라는 한국에서 그는 단순히 객(客)이 아닌 문화 관찰자의 시각에서 한국 문화를 해부하려 한다. 이번에 펴 낸 ‘발칙한 한국학’이라는 제목의 책도 기본적으로 호기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국을 관찰한 일종의 문화 에세이다. 책의 절반은 그가 보는 한국 문화에 대한 단상들이 담겨 있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로 구성돼 있다. 그의 글과 사진에는 여기저기 발품을 팔며 한국사회 구석구석을 찾아 다닌 땀의 흔적이 배어있다.


‘한국에 있는 외국 마을 표류기’ 편에서는 한국의 텍사스촌, 이태원, 인천 차이나타운 등의 풍경을 담아 냈고 ‘한국에 사는 재미있는 사람들’ 편에서는 20년 전에 한국에 와 이슬람교 포교 활동을 한 태국인, 한국에서 클럽 DJ를 하고 있는 재일교포 2세, 한국을 찍는 비디오 작가, 레이건의 양복을 만든 이태원 양복 재단사 등 우리가 미처 놓쳐 버린 다양한 한국의 얼굴이 담겨 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의 직업은 러시아출신 호스티스에서부터 외국인 노동자, 외국 군인, 식당 주인, 영어 강사, 신부에 이르기까지, 출신국가는 일본 중국 미국 영국을 비롯해 이집트 파키스탄 루마니아 코트디브와르 케메룬 등이 포함돼 있다.


그가 전하는 사람들을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땅에 외국인들이 정말 이렇게 많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탄성이 새어 나온다. 저자는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고 포용할 줄 아는 세계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국의 어떤 것은 매혹시키고 어떤 것은 짜증나게 한다. 하지만 인간은 관대하고 사랑이 많은 만큼이나 이상하고 별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미국이나 서양이 한국보다 더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다를 뿐이다. 다름, 이상함에 관한 한 나는 절대 자유주의자다.’

때로 진지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거리낌없이 털어놓는 한국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다보면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호랑이 나라/데이비드 리치 지음/320쪽 8000원 늘봄


‘여관에 가보면 얇은 매트리스인 요를 볼 수 있다. 내가 사용해 본 침구 중 가장 편하다. 일단 누우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 너무 편해서다. 곡물 껍데기로 채운 한국의 베게를 베면 마치 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 듯 살랑살랑 소리가 난다.’

‘한국 사회는 소주라는 바다에 떠 있다. 한국인들은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데 소주까지 마시면 평범한 박씨도 파바로티처럼 노래를 부른다. 한국에 있는 동안 밤 길거리에서 소주 세레나데를 몇 번 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워싱톤 D.C나 볼티모어에서 한밤 중에 들리는 총성에 비하면 그것은 별 것 아니다.’

 

우리에겐 너무 낯익은 일상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신선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 한국 예찬의 주인공은 7년째 서울에 살고 있는 미국인 데이비드 리치씨(50). 미국 버지니아 대를 졸업한 그는 미국 남부 과학저작자협회 회원으로 17권이나 되는 과학관련 저서를 가진 저술가이다. 어릴 적 집안의 기대를 받았으나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글쓰는 일을 택했다고 한다. 95년 한국관광공사 컨설턴트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서울과 인연을 맺은 그는 지금 서울의 링구아포럼 연구소에서 영문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호랑이의 나라’라고 말한다.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는 포효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에게 서울의 새벽길은 지난밤의 찌꺼기가 아니라 새로운 활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시간’이다.


‘어느 도시나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 있다. 모든 것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 여기 서울의 가장 좋은 시간은 해뜨기 전이다.’

책에는 외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한국의 풍물에 대한 재치있는 단상이 담겨있다.


‘한국에 와서 김치를 먹어 보지 않는 것은 물을 묻히지 않고 스킨 다이빙을 하는 것과 같다. 김치 한접시에는 음식으로서의 가치 예술 제도 등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런데 김치 국물을 마시려면 튼튼한 위장이 필요하다. 이렇게 시고 매운 음식을 잘 먹는 한국인들은 온몸의 기관이 철갑으로 싸여 있지 않을까.’

‘내가 서울에서 보는 사물 세 개 중 하나는 계란이다. 편의점에 들어서면 바구니에 가득 담긴 계란이 놓여 있고 목욕탕을 가도 있다. 목욕할 때 왜 계란이 필요한 지는 확실치 않다. 거리도 온통 계란천국이다. 계란을 가득 실은 트럭이 달리고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층층이 쌓아 올린 계란판을 운반한다. 정말 놀라운 균형예술이다.’

 

이 책은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우리는 오히려 지겹고 힘겹다고 느끼는 일상을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라보게 한다. 무엇보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마지막 1분1초까지도 생산적으로 사용하려 한다. 이런 젊은이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묘한 아픔을 느낀다. 성장기때 나 역시 그랬다. 정상에 오르라는 가족의 강한 압력아래 한동안은 잘 해냈다. 미국 최고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학위도 받았다. 하지만 대학원 과정 도중에 망가지고 말았다. 내 자신을 되돌리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속도를 늦추지 않겠는가. 성공은 생각보다 이루기 어렵고 또 실망스럽다.’

 

한국의 힘은 ‘아줌마’들에게서 나온다고 믿고 있는 그는 한국의 택시 역시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친절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예찬을 위한 예찬이 아니라 어쩌면 서울을 가장 서울답게 보는 한 이방인의 눈길이 신선하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목록

댓글 0개 / 답변글 0

댓글쓰기

‘ 책 ’의 다른 글

책의 향기 / 경제성장 南-안보위협 北… 외국인들이 보는 한반도 2010-03-20
그 시절 그 풍경 추억이 방울방울… 임정빈 교수 ‘검정고무신…’ 출간 2006-10-27
책 / 이방인 두 사람이 본 한국-한국 사람…이상한 나라, 유쾌한 나라 2002-04-20
볼로냐 '어린이와 청소년 도서 전시회'를 참관기 2002-04-13
[책을 고르고 나서] 비판에도 예절은 필요하답니다 2002-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