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어린이와 청소년 도서 전시회'를 참관기

발행일: 2002-04-13  /  기고자: 허문명
면종: 문화
 

중세 이래 유럽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이며 세계 최고(最古) 대학인 볼로냐대학교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 중 북부 아펜니노 산맥 기슭에 자리한 도시 볼로냐. 39년 전 이 곳의 출판인들이 세계 최대 책 박람회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매년 열기 시작한 ‘어린이와 청소년 도서 전시회’가 올해로 39회째를 맞아 10일 개막됐다. 13일까지 계속되는 올해 도서전의 주제는 ‘책과 인터넷의 결합’(Book & Web).개최 초기만 해도 10여개국 100여명 참가에 그쳤던 이 전시회는 갈수록 규모가 커져 어린이 책 출판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이자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도서 박람회가 됐다. 올해도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벨기에 중국 대만 이집트 등 전 세계 67개국에서 1350개 출판사 관계자,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등 총 4000여명이 모여 들었다.


볼로냐 외곽 2만2000여㎡의 널찍한 평지에 국가 별로 10여개의 전시장이 마련된 행사장은 행사기간 내내 전시 부스마다 출간할 책을 골라 저작권 계약을 하려는 사람들, 일러스트레이터들로부터 최근 출판 경향을 듣는 사람들, 전화나 인터넷으로 시장 동향이나 책 계약을 먼저 마치고 이번 전시회에서 서로 만나 얼굴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영미 전시관에서 두각을 나타낸 곳은 스콜라스틱, 디즈니가 설립한 하이페리온 등이며 영국의 옥스퍼드출판사도 과학 교양서와 동물 그림책 등 수준있는 어린이 교양도서로 눈길을 끌었다.


이번 행사의 고문을 맡고 있는 교수이자 소설가 칼라 포에지오씨(56·여)는 “어린이 서적 제작 방향이 비디오나 CD롬 타이틀 등 멀티 미디어 분야에서 네티즌들이 바로 웹사이트로 접속해 종이책과 인터넷이 교감할 수 있는 시대로 옮겨 가는 듯 하다”고 전했다.


개최국인 이탈리아를 비롯 주로 북유럽권 국가들이 인터넷에 접속하면 종이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아예 줄거리를 독자 마음대로 바꿀 수도 있는 새로운 책들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특히 이탈리아 출판사인 디아고스티니사가 내놓은 고대 유적 탐험대의 모험을 그린 ‘라 클레시드라(La Clessidra)’가 최고 인기를 끌었다.


이와 함께 멀티미디어 전용 전시관인 ‘뉴미디어 아케이드’에도 20여개 회사들이 부스를 설치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주최측은 97년부터 어린이용 소프트웨어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책과 멀티미디어의 건강한 조화를 위해 ‘뉴미디어 상’(New Media Award)을 제정 운영해 왔는데 올해는 6개 출판사에게 상을 주었다. 13개국에서 출품된 900여개 작품들 중에서 한국 최초로 영어교육 소프트웨어 전문 업체 리틀팍스(little fox)의 영어 홈페이지(www.littlefoxkids.com)가 수상작에 포함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지난 해에 이어 멀티 미디어관에 참가한 리틀팍스는 귀여운 아기여우 캐릭터와 창작 동요를 이용한 영어동화 소프트웨어와 교재를 CD롬으로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회사 양명선 대표이사는 “기발한 상상력과 깨끗한 화면 다양한 음향 등이 선정위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며 “앞으로 미국으로 영어 학습 교재를 역수출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통적인 그림 동화 분야의 두드러진 흐름은 디즈니 애니메이션류의 그림보다 정적이고 회화적인 느낌이 강한 작가들의 그림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행사에서 가장 권위있는 ‘볼로냐 라가치 어워드(Bolobna Ragazzi Award·볼로냐 어린이상) 유아 부문 수상작인 미국 작가 샌디 터너의 ‘고요한 밤’(Silent Night)도 크리스마스 이브 고요한 밤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명한 필치로 그려 낸 책.


특히 세계 아동 그림작가들의 등용문이자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키워 준다는 점에서 행사때마다 관심을 끌어온 2002 일러스트레이터 전시회도 빠질 수 없는 볼거리. 전세계 150여명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참가했다. 올해에는 특히 ‘아랍 특별전’이 열려 어린이 출판물이 서구 중심의 획일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문화의 다양성이나 각 민족의 전통속에 숨어 있는 독자적인 문화와 이미지를 살려 내야 한다는 주최측의 의지를 반영하기도 했다.


행사 관계자인 리카르도 카톨라씨(45)는“‘아랍 특별전’을 기획한 것은 9.11테러이후 찢긴 세계가 그림으로 통합되는 기회를 만들자는 취지도 포함됐다”면서 “여기에 출품된 그림들은 서구에서는 볼 수 없는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터치로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어린이 출판시장의 비약적 성장과 함께 2∼3년전부터 볼로냐 도서전은 한국 출판 관계자들로 붐빈다. 올해도 150여명의 국내 출판관계자들이 도서전을 보러 볼로냐에 왔고 인근 호텔을 비롯해 전시장 곳곳에서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동양인들이 단연 한국인들이었다.


한 출판사 사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계약을 하려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는데 그래도 올해는 약간 차분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불과 몇 년전 까지만해도 전집류나 디즈니 만화를 차지하려고 경쟁적으로 몰려 들었지만 이제 서서히 어린이 단행본의 중요성을 인식한 출판사들이 다양한 아이템을 들고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 1곳에 불과했던 한국 부스가 올해는 사계절 길벗 재미마주 능인미디어 교원 리틀팍스 등 6개로 늘어난 것도 긍정적인 현상. 과거에는 외국출판물 판권을 사가기만 하는 양상이었으나 이제는 우리 출판물을 도서전에 내놓아 외국에 팔 수 있을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게 출판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볼로냐〓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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