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힘드세요? 제 얘기 들어보세요"

발행일: 2002-01-05  /  기고자: 허문명
면종: 문화
 

◇둥지/최관석 지음/ 277쪽/8000원/북하우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관석이에요. 최.관.석. 83년 개천절날 태어났으니 새해 열아홉이 되었네요.


저는 친구들에게 이제 막 우리가 열아홉개 생의 정류장을 지났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냥 ‘지났다’고 하기엔 지난 5년이 제게 너무 힘든 날들이었어요. 그동안 전 지독한 게임을 치러 왔거든요. 물론 그 게임은 지금도 진행 중이랍니다.


아빠 사업이 그런대로 될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남 부러울 것 없는 평범한 중산층이었지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회장을 지내고 중학교 1학년때는 수학 과학 경시대회에서 1, 2등을 할 정도로 활달하고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답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지요.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혼자 남은 남자로서 엄마와 누나를 지켜야 한다고, 아빠는 돈 5만원을 손에 쥐어 주며 그렇게 말하고 떠났어요. 엄마가 울면서 ‘회사가 부도났다’고 했어요. 부도? 무슨 뜻인지 누나에게 물었더니 “망했다는 거야”하더군요.


2층 양옥집은 하루 아침에 다른 사람 것이 되고 겨우 방 한 칸을 얻어 엄마 누나와 한방살림이 시작됐죠.


제 하루 용돈은 단돈 1000원. 500원으로 매점에서 빵을 사먹고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비로 250원을 썼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을 걸어 다니며 매일 모은 250원은 참고서를 사는데 썼어요. 한 20일 모으면 헌책방가서 한권 살 수 있었어요.


생활비가 없어 어머니는 사채를 빌리고, 수업료가 없어 또 사채를 빌리고. 사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지요. 사채꾼들이 늘 집 앞을 지키고 섰고 학교 교실에까지 찾아왔어요.


심지어 누나가 수능시험을 보는 날에는 새벽 2시까지 행패를 부리고 엄마가 취직한 회사까지 찾아가 월급을 빼앗아 갔지요.


급기야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 보험금까지 빼앗아 갈 때는 이런게 어른들이 살아가는 방식인지 절망과 배신감에 자살까지 심각하게 생각했답니다.


유서를 쓰다 찢다, 행복했던 시절 앨범을 보다 찢다, 잠든 다음날 아침 눈을 떳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 지금 이런 상황을 즐기기로 하자.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하자. 내가 왜 여태 이런 생각을 못 했지.’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했어요. 야자(야간자율학습)시간 틈틈이 6개월을 써서 인터넷에 띄웠더니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친구들에게 보여 줬더니 다들 울더라구요.


교과서에 나오는 ‘안빈낙도(安貧樂道)’란 말 다 거짓말이에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 입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죠. 하지만 전 이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나갈 자신이 생겼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어머니를 제일 존경해요. 살림만 하고 사시던 분이었는데 막상 어려움이 닥치자 낙천적인 생각과 즐거운 생각으로 저희들을 일으켜 세우셨어요. 며칠 전 세밑에는 엄마랑 소주한잔 했답니다.


지금도 연락이 없는 아버지 생각하면 원망스럽기도 하고 가슴이 저려오기도 해요.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이제 비로소 숨을 돌린 느낌이에요. 엄마 하시는 일(판매업)도 그런대로 잘 되고 저 역시 수능 끝내고 대학 합격소식만 기다리고 있답니다.


얼마 안 살아 봤지만 정말 인생이 예측 불가능하더라구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막상 그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아침에 눈뜨는게 두려울 정도로 사는게 힘들죠. 하지만 지난 일을 돌이켜보니, 세상은 노력한 만큼 돌아 오는 것 같아요.


물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에요. 지난 해엔 모두들 힘이 드셨죠. 저같은 아이도 열심히 살고있으니 모두 힘들 내세요, 화이팅!!!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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