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부처/도법 지음/204쪽/7000원/호미혹
싯다르타 고행상을 보신 일이 있으신지. 피골이 상접한 얼굴은 영락없이 해골이고 갈비뼈는 폐허의 서까래같다.
‘도대체 무엇이 저토록 자신의 목숨을 걸게 한 것일까?’
도법 스님(전남 남원 실상사 주지)은 한밤 중 홀로 하늘을 바라보며 까닭없이 이렇게 묻곤한다. 이 친구가 꾸었던 꿈은 무엇인가? 이 친구가 실현하고자 하는 바람은 무엇인가?
“그의 꿈과 우리의 꿈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요. 다른 것이 있다면 그 친구는 ‘내려놓음’으로써, 우리는 ‘거머쥠’으로써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꿈은 잡히지 않는 꿈일뿐 역사가 되지 못했다. 거머쥐는 길에선 갈등과 대립만 물결쳤다. 도법 스님이 다시 ‘부처’를 이야기하는 이유다.
‘내가 본 부처’는 단순히 부처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 아니다. 연대기적 나열이 아니라 부처의 삶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조각내 우리 현실에서 부처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보여준다. 불교의 출발이 곧 부처님이므로 참선만 열심히, 화두 들기만 열심히 하면서 정작 소홀한 부처의 생을 제대로 안다면 불교를 제대로 알게 된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
“인간적 측면에서 보면 부처는 실패한 삶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돌아 가셨고 부친의 나라가 이웃나라 침공으로 멸망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는 개인의 경험에 머물고 말 수도 있는 깨달음을 역사적인 종교로 바꿉니다. 역사상 가장 투철한 혁명정신으로 살다간 인물이지요.”
이 책은 사실, 이기와 해체와 분열의 시대를 자기 몸의 고통으로 받아들여 살아온 한 눈밝은 노장스님이 ‘인간 부처’를 키워드로 풀어낸 정직한 수행기록이다. 30년 승려로 치열하게 살아온 수행자가 보는 부처의 가르침과 한국불교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불교란 부처님께 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 충실한 ‘현재를 온전히 사는 삶’이라는 것, 직면한 현실 바깥에 있는 쓸데없는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순간순간 ‘존재 그 자체’만으로 사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책에는 ‘부끄럽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이쪽 저쪽에서 비난받는다’는 자조가 빈번하다. 뒤에 이어지는 한국의 수행문화에 대한 서릿발같은 질타가 설득력을 갖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수행자란 대접 받는 직업이 아니다. 부처는 원래 거지였다. 요즘 수행자들은 부자다. 한국 수행자들은 너나없이 허울만 갖고 기득권 누리며 대접 받는데 익숙하다. 사상과 정신은 밑바닥이면서 행세는 위에서 하려한다.’
본래 이 책은 스님이 되려는 전국의 행자들에게 스님되는 첫 단계인 사미계를 주기 전에 강의한 내용(98년∼2000년)을 정리한 것이다. 책에는 초심 수행자들이 지녀야할 참출가 정신에 대한 노 선배스님의 서릿발 외침이 가득하다.
‘진정한 출가란 머리깍고 장삼가사 입는 것이 아니라 삶의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몸의 출가가 아니라 소견머리와 버릇을 고치는 마음의 출가가 진정 출가다.’
스님은 형식주의에 빠져 위선적이어서는 안되고 관념주의에 빠져 생활속 실천이 따르지 않는 공허한 삶도 경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고기먹어 안된다고 하지만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오늘 밥을 먹을 인연인데 입맛이 국수를 먹고 싶다고 먹으면 식욕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고기든 음식이 주어졌다 해도 감사히 받아야 한다. 부처님이 육식을 금한 이유는 일부러 잡아먹거나 사다 먹거나 부탁해서 먹지 말라는 거였다.’
또 한국불교에 만연한 남녀불평등 문제 역시 삼천대천세계를 다 끌어안고 살아간 부처님 뜻과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요즘 전국의 선방은 동안거 결제로 구도의 열기가 뜨겁다. 산중이나 산밖이나 불교를 모르는 이나 아는 이나 머리깎은 이나 그렇지 않은 이나 이 시대를 뜨겁게 살고 있는 한 수행자의 목소리로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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