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서 한 의료인이 코로나19로 숨진 피해자의 시신을 이송하고 있다. [뉴시스]](https://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5e/99/61/9a/5e99619a1adfd2738de6.jpg)
4월 6일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서 한 의료인이 코로나19로 숨진 피해자의 시신을 이송하고 있다. [뉴시스]
-코로나19는 사스나 메르스의 진화인가요? 아니면 변종인가요?
“아뇨, 그냥 원래 있었던 겁니다. 지구촌 인간들이 피부색이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허리, 다리 길이도 다 다르듯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종류가 존재합니다. 다만 그 녀석들 중 누군가가 우리 몸에 우연히 들어왔을 때 인식하는 것일 뿐입니다.
생명체는 다 똑같습니다. 코로나19라고 해도 그 집단 내에는 적어도 수십, 수백 가지 유형이 존재할 겁니다. 다만 기후, 지리 요건과 같은 상황 그리고 숙주에 따라 주류 집단이 바뀌는 것이지 변종이 아닙니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인간의 개입, 면역 상태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변종이란 단어는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DNA나 RNA 서열이 변해 다른 특성을 갖는 바이러스로 재탄생하는 것을 뜻합니다. 학술적으로는 유전체가 적어도 8% 이상 차이를 보여야 변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코로나19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파력이나 병독성 면에서 생각처럼 전혀 다른 것이라고 오해할 만한 변이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의 확산은 바이러스 탓이 아니라 결국 도시의 집중화, 글로벌화를 만든 인간 탓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확산이 빠르다는 것은 바이러스가 이동하는 절대 속도가 빨라져서가 아니라 사람이 모여 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같은 무서운 놈이 오리라고 예측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식의 전염병이 동시에 대규모로 확산되리라는 예상은 이미 많은 학자가 논문을 통해 밝혔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나왔을 때 이런 상태를 예상했나요.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은 잘 막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전 세계에 이렇게 불이 붙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사스와 메르스, 신종플루 다 겪어보지 않았나요. 호흡기 바이러스가 나오면 이런 흐름으로 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로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혹시 2009년 신종플루 감염자가 몇 명인지 알고 있나요?”
-….
“당시에 100만 명을 넘었습니다만 지금은 신종플루에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지요.”
-선진국들도 코로나19에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사대주의시군요(웃음). 마스크 쓰는 것을 죄악시, 터부시하는 게 문제입니다.”
-지금의 문제가 공포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공포에 관한 주제는 제 영역이 아닙니다.”
-공포도 실체 아닌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나 기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이 있는 한 바이러스는 언제나 함께 있을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일어난 현상을 부정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는 팩트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해야 합니다.
코로나19는 완전한 소멸 대신 계절성 폐렴으로 우리 곁에 남아 다음 세대까지 지속적인 감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구에는 수천만 종의 생명체가 있습니다. 인간만이 유일한 종(種)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 중 한 종일 뿐입니다.
박쥐를 싹 없애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 저는 인간의 교만함이 어디까지 이를까 생각합니다. 바이러스는 인간이 없이도 삽니다. 인간종 하나쯤 없다고 사라지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인간이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태 전략이 뭔가요. 우리는 모여 있어야 생존이 가능한 호모사피엔스로 출발했습니다. 이에 비해 고양잇과 식육동물이나 호랑이, 퓨마처럼 흩어져 사는 것이 개체 속성인 생명체도 있습니다. 이들은 짝짓기하고 새끼 낳고 어미가 1년 키워주면 각자 자기 영역으로 다시 흩어집니다. 나중엔 어미하고도 영역 싸움을 합니다.
모여 사는 인간의 속성이 원죄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여 살아감으로써 치러야 할 손해나 비용이라고 봐야겠지요. 모여 사는 개체에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전염병입니다.”
-인간을 대체할 인공지능을 만들어낸다는 시대에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이라니 허탈하기도 하고 머릿속이 하얘지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이 인류에게 또 다른 성찰의 시간을 주는 계기라고도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직진, 직진, 마치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성장만이 지상명령인 것처럼, 최고의 선(善)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정말 그런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우리 인간의 생존 특성 자체가 집단생활이고, 도시에서부터 문화가 시작된 조상들의 후예라고 할 때 그러한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선조는 다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본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다닥다닥 붙어살고 싶어 하는 유전자가 우리 몸에 박혀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소수의 전문가가 합리적인 지혜를 내고 다수는 그걸 받아들여 활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버려야 합니다. 바이러스도 안 죽고 사람도 안 죽거나 바이러스만 깨끗하게 정리되고 인간은 모두 살아남는 상황은 없습니다. 희생을 최소화하려면 사회적 비용을 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치르는 중입니다. 코로나19는 삶에서 언제든 또 닥칠 수 있는 일입니다. 감내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인데 감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면 고통이 큽니다.”
-생물학자로서 이번 사태를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나요.
“감동적이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감동적인 대목은 무엇인가요.
“죽을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불나방처럼 전염병 환자들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의료진을 보십시오. 생면부지의 사람들 목숨을 살리기 위해 온몸을 꽁꽁 싸매고 제때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면서 말이지요. 어떤 나라는 요양병원 노인들이 감염되자 손 놓고 도망갔다는데 우리 의료진은 안 도망갑니다. 의료인으로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행복으로 아는 삶, 생명의 본능을 넘어서는 사람들…. 안타까우면서도 고마운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