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횡설수설] 갤러리

발행일: 2008-01-12  /  기고자: 허문명
면종: 오피니언·인물
 

일본 만화 ‘갤러리 페이크(fake)’는 제목 그대로 ‘가짜(fake)’ 그림을 팔면서 부자들의 지갑을 여는 화려한 언변의 화랑 사장이 주인공이다. ‘영혼’에 호소한다는 미술품 뒤에 숨겨진 사기와 음모가 적나라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불거진 몇몇 ‘갤러리 사고’의 추억을 떠올려 보더라도 만화가 한낱 허구 같지는 않다. 대형 갤러리 가나아트센터 회장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경매회사 서울옥션이 거래한 이중섭 그림이 위작(僞作)으로 밝혀졌다. 삼성가(家)가 화랑계의 큰손 서미와 국제갤러리를 통해 기업 비자금으로 고가 미술품을 구매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갤러리가 편법과 사기의 공간이 될 위험성이 높은 이유 중에는 ‘미술작품의 특수성’도 포함된다. 가격이란 것이 부르는 게 값이고 그것도 화랑마다 제각각이다. 사장만 눈감으면 회계 조작도 그리 어렵지 않다. 거액의 시세 차익을 챙겨도 양도세를 한 푼도 안 내고, 토지나 건물처럼 등기 대상도 아니어서 상속 증여 뇌물 수단으로 안성맞춤이다. 국내 갤러리들의 비밀주의는 세계적이다. 오너 한 사람만 아는 거래가 얼마든지 있고, 필요하면 소장자나 구매자에 대한 비밀을 철저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두 측근 부인들이 최근 같은 빌딩 위 아래층에 화랑 지점을 냈다고 해서 화제다. 정두언 의원 부인의 이름을 딴 ‘이화익갤러리’는 2001년 인사동 작은 임대화랑에서 시작해 2005년 서울 종로구 북촌에 화랑을 내면서 성장했고 이번에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지점을 열었다. 박형준 의원의 부인 조현 씨는 18년간 부산에서 ‘조현화랑’을 경영해 오다 이번에 서울지점을 냈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화랑 영업은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고 충성고객이 필수”라며 “두 화랑의 행보는 그만큼 고객 네트워크가 튼튼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민중미술 작품을 주로 거래해 온 한 화랑이 급성장해 주목받은 바 있다. 이화익 씨는 “남편 유명세를 타는 건 할 수 없죠, 뭐”라고 했다고 한다. 정치와 그림이 ‘부창부수(夫唱婦隨)’ 아니냐는 눈총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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