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정치고문 야율초재(1190∼1244)는 뛰어난 관리이자 정치가였다. 스무 살 때 칭기즈칸의 포로가 됐다가 관료로 등용된 그는 충직해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군대와 관리들이 백성을 수탈하지 못하도록 했고, 세제를 정비해 몽골제국의 경제적 기초를 닦았다. 당 말기에서 5대에 걸쳐 활약한 그는 주인(정권)이 바뀌어도 주인이 항상 옳은 정책을 고르도록 용기 있게 설득했다고 한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근대 관료는 장기간 예비교육을 통해 전문적 훈련을 받은 고급 정신노동자로 발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심성이 명예심이다. 관료에게 명예심이 없다면 부패와 속물근성에 물들게 된다고 베버는 말한다. 미국만 해도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라 수십만 명의 관리가 한꺼번에 바뀌는 ‘약탈 정치가들의 아마추어 행정’이 지배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발달과 함께 공복(公僕)으로서의 명예심을 가진 직업관리들이 등장했고 이들이 오늘의 미국을 떠받치고 있다.
▷국정홍보처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업무보고를 하면서 인용한 베버의 말, ‘관료는 영혼이 없다’가 논란이 되고 있다. 김창호 처장은 이에 대해 “관료는 어느 정부에서나 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견강부회다. 행정은 선출된 권력에 복종해야 하지만 그 권력이 명백히 잘못한 일에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관리는 특정 정권에 앞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헌법 제7조). 따라서 이에 반하면 공무원도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정홍보처가 과연 그랬는가. 지난 5년간 홍보처가 한 일은 언론의 숨통을 막아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한 것밖에 없다.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란 미명하에 청와대보다 더 앞장서서 기자실에 대못을 박았다. 명색이 언론학자라는 김 처장이 단 한번이라도 현장 언론인의 처지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 적이 있는가. 홍보처를 떠나면 김 처장은 대학에 복귀할 것이라고 한다. 교수로 변신할 그가 학생들에게 뭘 가르칠지 궁금하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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