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한 대다수 국내 북핵문제 전문가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노이 선언'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도 같은 선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협상은 결렬되었고 합의안에 대한 서명은 취소되었습니다. 우리도 놀랐지만 국제사회도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회담 결렬에 대한 북미의 주장은 매우 다릅니다.
트럼프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전면적 제재완화’ 를 주장했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영변핵시설 외에 다른 핵시설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설, 핵탄두 무기 체계를 갖고 있는데 이에 대한 신고 및 폐기 문제를 합의보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부분적으로 제재를 먼저 풀면 영변을 폐기한다는 입장이었는데 미국이 이를 거부해서 결렬되었다"고 했습니다. 협상 결렬을 둘러싸고 양측이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니 향후 회담도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1. 미국 내 여론
미국 내 여론은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스탠퍼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인 신기욱 교수는 오늘 아침 저와의 전화통화에서 “트럼프가 북한에 한 방을 먹였다. 어설픈 양보를 해서는 안된다는 미국 국내 상황도 작용했다. 이제부터야말로 진정한 북미 협상이 시작됐다고 할수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번 북미회담의 결렬을 거시적인 앵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뉴욕 대학교 정치학과 석좌교수이자 국제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한 현대 국제정치학의 저명한 학자인 부에노 데 메스키타(Bueno de Mesquita)교수는 ‘국가간 분쟁에 대한 외교안보정책은 국내적 갈등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전쟁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관계의 다양한 모델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의 상상력을 이번 회담에 적용시켜 본다면 이번 북미회담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각자 자신들이 속해있는 국내 정치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지도자가 안고 있는 정치적 딜레마, 그건 무엇일까요?
2. 김정은의 딜레마=비핵화에 대한 군부의 반발을 누그러 뜨리면서 경제도 일으켜야
이번 회담을 앞두고 쏟아진 수많은 기사들 중에 저는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스저널이 보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대화 반대파는 물론 북미대화 반대파 50~70명을 숙청했다'는 기사를 의미심장하게 봤습니다.
신문은 김위원장이 부패청산을 내세우며 이들의 자산을 압류했는데 이는 국제제재에 따른 고갈된 재정을 메우기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북미대화를 원치않는 군부 내 ‘매파’를 길들이고 남북 화해와 북미대화를 주장하는 '비둘기파'에 힘을 실어주기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함께 실었습니다.
이번에 숙청 인사들중에 과거 아버지 김정은 국방위원장도 손대지 못했던 최고위 군부인사도 포함됐다면서 말이죠.
보도가 맞다면 현재 북한 군부 내부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협상' 전략을 놓고 군부 일부의 반발기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 아버지 김정일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로 저는 지난 달 북한 내부사정에 정통하며 북한과도 협상을 했었던 워싱턴 내 북한 전문가로부터 "김정은이 아무리 강한 독재적 리더십을 갖고 있다해도 비핵화 과정에서 얼르고 달래서 함께 끌고 가야할 세력이 있다. 미국은 북한과 협상할때 이점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김정은이 이들을 잘 아우르고 이끌고 갈수있도록 고려하는 것을 협상의 중요 포인트로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현재 김정은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종전선언보다 ‘돈'입니다. 신년사에서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집요하게 '제재완화'를 요구한것도 그만큼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는 방증입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경제리뷰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북제재가 다소 완화되지 않으면 올해 북한경제는 '고난의 행군'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습니다(조선일보 보도)
지난해 한국은행은 2017년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 증가율을 -3.5%로 추정했는데 이는 1997년(-6.5%)이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그런데 현재 이같은 북한 경제 어려움의 직격탄을 맞고있는 계층은 다름아닌 군부를 포함한 기득권 계층입니다. 이미 인민들은 장마당 경제를 통한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지요.
지금 김정은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제재완화를 통해 수입이 줄어든 군부의 반발을 채워주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습니다.
북한 군부를 달래고 가지 않으면 장기적 비핵화 협상전략도 수행하기 어렵다는 정치적 부담까지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은으로서는 뭔가 미국을 만족시킬만한 획기적인 비핵화 조치, 즉 영변 이상의 것을 내놓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대담한 협상'이라고 말만 했지 양보만 하고 얻어온 것이 뭐가 있었느냐, 이런 상황에서 영변 외에 또 무슨 조치를 양보하겠다는 거냐”하는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정치란 게 명분과 정당성이 중요한데 적게 주고 많이 받아야 한다는 북한 내부 여론도 반영하려면 금강산 개성공단 정도가 아니라 북중간의 자유로운 교역보장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동안 북한 군부는 석탄 철광석 수산물 등의 수출과 중국제품 수입의 특권과 허가권을 통해 돈을 벌어왔습니다. 그런데 제재로 북중관계에 빗장이 걸리고 미중 무역 갈등 속에서 활로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걸 트지 않고서는 군부의 특수계층의 이권을 만족시킬수없는 상황인거죠.
또 현재 국내정치적으로 트럼프가 처한 곤경을 잘 알고 있는 김정은으로서는 '영변' 정도의 카드만으로도 트럼프의 파격적이고 즉흥적인 스타일을 감안할 때 하노이 회담 테이블에서 뭔가 큰 양보를 얻어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미중 무역 분쟁도 서서히 타결되어가는 분위기에서, 또 미국도 북한 군부의 반발로 비핵화 파탄을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금강산 개성공단처럼 가역적이고 어떤면에서 '굳은 자'인 부분제제 완화가 아니라 불가역적인 전면적인 제재완화도 가능하리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북한으로서는 중요한게 석유와 교역인데 금강산 개성 풀린다고 석유가 당장 들어오는것은 아니죠.
3. 트럼프의 딜레마=민주당의 의회권력의 장악과 뮬러특검
트럼프는 또 어떤 입장이었을까요.
이번 회담에 대한 미국 정가와 학계의 전망은 대체로 회의적이었습니다. 북미회담을 한마디로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세였습니다.
하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미국 민주당의 트럼프의 대북행보를 보는 눈은 계속 비판적이었습니다. 물론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그동안 일정 정도의 성과를 냈음을 인정하면서도 실질적 비핵화는 있었냐는 근본적 의문을 계속 제시했고 이번 회담 테이블에서 웜비어 문제가 나올 정도로 북한 인권문제도 제기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하노이 회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까지 했습니다. 김정은보다 더 미국민들의 눈과 귀를 잡은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회담이 한창 진행중이던 어제 미국에 있는 지인들과 통화를 해보니 '지금 미국민들의 관심은 북미대화가 아니라 뮐러 특검 청문회에 나온 트럼프의 최측근 마이클 코언의 입'이라는게 중론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 방송은 청문회를 내내 생중계했습니다. 트럼프도 몸은 하노이에 있으면서 특검과 관련해 계속 트윗을 날릴만큼 머릿속은 워싱턴에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알고 있는 스탠포드 법대 교수는 "만약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 바로 감옥행"이라고 단정할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코언의 입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핵폭탄급이라는 게 미국 내 다수여론입니다.
뮐러 특검으로 트럼프의 돈을 통한 입막음, 거짓말을 넘어 반역죄까지 드러날 경우, 여기에 북핵외교까지 북한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는 '사고를 칠 경우' 정치적인 곤경에 빠질 뿐 아니라 향후 북미회담 과정 자체도 청문회대상이 될수있다'는 강력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게 현지 미국 분위기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제멋대로인 트럼프라도 국민들이 납득할수 없는 '통 큰 양보'를 북한에 하고 돌아갈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역풍이 어떠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지요. 섣부른 양보를 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판을 깨자는 게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지였을 것입니다.
4. 루저는 누구일까
이 대목에서 전 한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실무협상도 지지부진했던 상황에서, 더군다나 북한 김정은 카드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트럼프는 왜 회담에 응했을까요.
아마도 북한의 실무 협상팀들의 설득에 말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북한 팀들은 미국 팀에게 "아시다시피 우리의 체제 상 중요한 의사결정은 김정은 위원장이 내릴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두 정상이 의기투합해 만나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집요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북한 역시 트럼프의 파젹적인 스타일에 대한 기대가 높았겠지요. 결국 자승자박이 되었지만 말이죠.
트럼프 역시 자승자박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 아베 총리 옆구리를 찔러서까지 노벨평화상을 노골적으로 언급하게 할 정도로 평화상에 꽂혀 있습니다. 노벨평화상만 탄다면 그 즉시 특검 이후 청문회 탄핵에 대한 안전판이 마련되기 때문이죠.
이번 회담을 둘러싸고 대부분 외신들은 김정은이 루저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워낙 대국이고 민주주의 정치 시스팀이 확립된 나라이지만 북한이 걱정입니다.
독재적 리더십은 매우 강하기도 하지만 또 매우 취약한 구조입니다. 대북 협상에 긴밀히 관여했던 앤드류 킴 전 코리아미션센터장은 얼마전 스탠포드 대학 강연에서 "북한에 협상 전문가 풀이 너무 좁다"는 말을 한적이 있는데 의사결정 구조도 수직적인데다 인재풀도 작은 상황에서 급변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유연성이 떨어질수밖에 없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맞는 지적이라고 봅니다.
김정은은 과연 빈손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내부를 설득하고 군부를 달랠수있을까요.
오늘 새벽 하노이에서 리용호 외무상은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미국이 유엔제재 일부, 민수 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미국 전문가들 입회하에 영변 핵물질 생산시설을 영구폐기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좀더 양보할생각있으니 회담 더 해서 빠른 시간안에 타결해보자"는 것으로 향후 후속 회담을 향한 절박한 북한입장이 잘 드러낸 것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이번 회담 결렬로 김정은의 지도력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북한의 국내정치와 경제전략을 재점검해야 합니다. 미국에 대해 협상이냐 대결이냐 전략을 재설정해야 하고 협상전략도 다시 마련해야 합니다. 남북관계,북중관계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트럼프 속도 편하지 않겠지요. 무엇보다 국내 입지가 치명적 상처를 입기 시작하면서 입지는 더 좁아질 것 같습니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가 계속 좁아질 경우 대북정책 자체에 대한 청문회를 열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까요. 어떻든 트럼프 임기 내에 대북정책에서 큰 진전을 이루고자 했던 북한의 입장 역시 난감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남북 경협에 올인하며 김현종 통상전문가를 국가안보실 차장으로 배치하고 경제전문가인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주중대사로 검토하며 전열을 정비하던 문재인 정부도 내비게이션을 재설정해야 하는 분기점에 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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