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인’의 비극적 최후
김정남은 이런 무자비하면서도 뻔뻔한 체제의 본질과 맞지 않았다. 이른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북한 내 권력자의 길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베이징에서의 중국의 보호도 불편해했으며 탈북단체들이 원했던 망명정부 대표도 싫었다. 고모부 장성택까지 죽인 김정은이 자신을 향해 ‘세습 비판’ 등 순진하고(?) 솔직한 발언을 쏟아낸 이복 장손 형에 대해 살해 명령을 내린 것은 필연적이었다. 근대 이전의 역사를 볼 때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권력 주변 인사들 중엔 자살, 암살, 객사 같은 비극적 운명을 피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전현직 외교안보 당국자들에게 김정남의 한국행 망명을 왜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는지 묻자 “본인 스스로가 원치 않기도 했지만 우리로서도 활용가치가 별로 없었다”고 했다.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남이라는 존재를 아는 사람도 드물거니와 오랜 기간 해외를 떠돌아 북 지도층 내부의 깊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북의 변화를 위한 역할을 기대하기도 힘들었다는 것이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은 2012년 핀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정말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비명횡사한 지금, 가장 위험한 사람은 김한솔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삼촌(김정은)을 ‘독재자’라 칭하고 “향후 북한을 지원하는 인도주의 활동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산주의보다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도 했다.
대한민국이 보호할 수 없나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경험하고 있을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와 유족들이 한국 정착의 의사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탈북자들에게 적용된 인도주의적 원칙의 연장선에서 한국행의 문을 열고 시급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안내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SNS에서도 김한솔이 불쌍하다는 동정론과 함께 ‘그는 똑똑한 친구다. 대한민국이 보호해야 한다’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
김정남의 유랑과 피살, 유족들의 신변 위협은 모두 분단이 낳은 고통에서 기인한다. 분단의 희생양인 그들에게 따뜻한 동포애와 박애(博愛)로 품는 인도주의(人道主義)적 손길을 내미는 것은 남북 젊은 세대들에게 좋은 통일교육이 될 수 있다. “민족을 분단시킨 것은 정치 문제다. 남한에 갈 수 없고 친구들을 만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슬프기 때문에 통일을 꿈꾼다”(2012년 인터뷰)는 김한솔에게 대한민국이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의 장(場)을 열어주면 어떨까.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