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서인의 대표 황윤길은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보고했지만 동인의 대표 김성일은 “그런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정반대 보고를 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국가 안보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짜야 하는데 당시 조선은 그러지 못했다.
서인 소속으로 병조판서(지금의 국방부 장관)가 된 율곡 이이는 1583년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먼저 준비해야 하는데 오늘날 나라의 정사는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다. 한심하여 가슴이 터질 듯하다”며 개혁안을 상소하지만 탄핵 대상으로 몰려 사직하고 만다. 그리고 바로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9년 뒤 조선은 왜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었고 명의 참전으로 겨우 나라를 유지하다 1636년 다시 청의 침략을 받는다. 이후 258년간 사실상 청의 속국 신세였던 조선은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비로소 독립국이 되지만 이내 일본의 식민지로 유린당한다.
지금 우리의 국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산업화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해 이제야말로 국운의 융성기가 왔다고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오만과 자만심이 번졌다.
한반도에 전쟁의 유령이 떠다니고 있고 북한은 ‘핵실험’ 단계에서 ‘핵무장’ 단계로까지 발전했지만 우린 안보불감증에 빠져 무력해져 있다. “미국이 있는데 감히 우리를 칠 수 있겠어?” “저러다 쿠데타 아니면 민란으로 무너지겠지” “북핵은 공격용이 아니라 협상용이야” 같은 담론들도 횡행한다.
1960, 70년대 우린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뤘다. 1980년대 6월 민주항쟁으로 민주화시대도 열었다. 자부심이 한없이 고조되었다. 다들 국운의 융성기가 왔다고 했다. 삼성이 소니를 이기고 현대차가 미쓰비시를 추월하며 올림픽에서 세계 10위권의 메달을 따는 걸 보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양 자기도취에 빠졌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자만심이 번졌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경고도 무시했다. 가진 사람들은 펑펑 쓰고 노조 등 이익집단은 자신의 꿀단지를 지키기 위해 머리띠를 둘렀다. 이런 오만과 근거 없는 낙관주의 풍조가 안보에도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대선놀음에 빠져 북핵 위기 앞에 갑론을박하며 정쟁을 일삼는 모습은 임란을 앞둔 조선의 조정을 보는 듯하다.
사드 배치 긍정 여론이 높아가는 것과 함께 자위적 핵무장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는 데는 최소한의 자구 조치도 내놓지 못하고 말 폭탄만 늘어놓는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 21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선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까지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고 나섰고 육군 준장 출신인 국민의당 김중로 의원도 “군 선후배들 모두 핵무장을 하자고 한다. 상대방이 핵을 가졌는데 나 홀로 비핵화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따졌다.
전술핵재배치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미국이 결정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 국민 여론의 지지가 있어야 하는데 핵무기 감축과 핵확산 방지를 주도하는 입장에서 미국이 주도적으로 철수한 핵무기를 다시 배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일 것이다. 이미 영국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도 미국이 반대했지만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했다. 미국은 공식적으론 강하게 반대했지만 사실상 용인하는 입장을 취했던 전례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에 안보를 미국에 절대 의존했을 때에도 핵무장을 추진했다.
핵무장은 우리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다. 국가중대사인 안보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바로 지금이 국민투표를 해야 할 때이다.
대통령은 직접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 탈퇴와 자위적 핵무장에 대한 국민의 뜻을 물었으면 한다. 그리곤 여야 모두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자주 국방 의지를 갖자. 임진란과 같은 국난을 막으려면 말이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