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대통령은 남한을 지켜줄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것도 경제 건설의 종잣돈을 벌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베트남이 공산화하면 한국까지 위험해진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베트남이 망하자 미련 없이(?) 떠나는 미국을 보면서 충격을 받는다. 미국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 출신으로 한국 대사를 지냈던 도널드 그레그는 2011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73년 한국에 왔을 때 박정희는 미국과의 동맹에 믿음을 잃고 있었다. 그게 바로 핵개발에 나선 이유”라며 “우리(미국)가 북한의 어떠한 공격도 보호해 줄 것이니 핵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하게 재확인시켜 결국 1977년쯤 핵을 포기했다”고 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카터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하자 비밀리에 다시 핵 개발을 재개한다. 최근 기밀이 해제된 CIA 보고서나 당시 측근이었던 오원철 제2경제수석,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 등의 증언에 따르면 “1979년엔 95% 전후로 완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북한 4차 핵실험을 보고 설마 쏘겠느냐, 기술 수준도 높지 않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김정은은 핵무기를 실전에 사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인물이다. 지난해처럼 일촉즉발의 긴장이 조성되었을 때 김정은이 “10시간 내에 항복하지 않으면 원자력발전소에 핵미사일을 쏘겠다”고 협박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인류가 만든 가장 가공할 살상무기인 수소폭탄 실험까지 지켜보며 이런 위기의식을 못 갖는다면 그건 정상적 사회가 아니다.
이번에 우리 국민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국제사회의 제재가 별 효과가 없었고 중국도 절대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워싱턴도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더구나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전략적 의사결정을 할 리가 만무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국정연설에서 ‘북한’이 빠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70년대 박정희의 핵 의지를 미국이 그토록 막았던 것은 북한 일본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한국이 먼저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의 핵무장은 대(對)중국, 대(對)북한 핵 억지력을 강화시키고 한국 방위에 대한 미국의 부담도 덜어줄 수 있다. ‘핵은 핵으로만 견제되고 방어 된다’는 것이 세계 핵무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남한의 핵무장은 국제사회의 약속을 깨는 것”이라 선을 그었다. 국가지도자로서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핵무장론은 이제 대통령까지 언급할 정도로 핵심 이슈가 됐다. 높아가는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화’ 여론을 한국과 미국 모두 진지하게 대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