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표 수리 소식을 들은 지난달 30일 저녁 대기업 부회장, 외국계 회사 최고경영자(CEO), 정치부에서 오래 일한
언론인, 사업가 등과 만났다. 우연찮게 다들 진 장관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그의 행보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됐다. 다들 “무책임하다”는 비판
일색이었다. “그 자체가 국가의 일부인 장관이 대통령과 의견이 다르다고 사표를 낸다는 게 말이 되나. 더군다나 최측근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에게
치명적 타격을 입힌 꼴이 되었으니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불안하다.” 진 장관이 “밖에서 돕겠다”고 한 말에 대해서도 “뒤통수 치고 절벽으로
밀어놓은 뒤 말로 ‘도와주겠다’는 격이다. 남의 입장보다 자기 입장이 우선인 사람은 공직에 중용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참석자들의 생각은 대체로 비슷했다. “공직에서는 의견이 다르더라도 결정이 내려지면 따라야 하는 게 밑에서 일하는 사람의
도리이다. 때로 사표를 쓰고 싶어도 조직을 위해서 사표 쓸 자유조차 없는 게 공직자의 운명이다.” 이야기는 차츰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으로
옮아갔다. “모든 문제는 진 장관 같은 사람을 요직에 등용한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지적이었다.
“이번 일은 윤창중 건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인사난맥이어서 더 걱정된다. 대통령의 복지정책과 리더십, 국민이 보내는 신뢰까지 타격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의 트레이드마크는
복지다. 나라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표를 준 것 아닌가. 그런데 정책을 펴보기도 전에 증세 논란에 이어 내부 갈등으로
주무장관이 사퇴하는 사태까지 불거졌으니 정책의 근간이 흔들린 셈이다.”
진 장관을 ‘배신자’로 몰아 내치는 상황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사람은 쓸 때도 잘 써야 하지만 내보낼 때도 잘 내보내야 한다. 물건 쓰듯 버려졌다거나 냉정하게 용도 폐기됐다고 느낀다면 이를
지켜보는 누가 그 자리에 가고 싶겠는가.”
기자는 이 대목에서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채널로 들어온 청와대 분위기와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에 대한 전언들이 떠올랐다. 최근 만난 한 대학교수가 친한 대통령비서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전한 내용은 이랬다. “수석비서관회의
분위기는 ‘침묵과 긴장’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컴퓨터를 앞에 놓고 ‘왜 지난번 보고와 다른 보고를 하느냐’고 질책하며 물으니 입이 얼어붙어 말을
못 한다는 것이다.”
한 친박 정치인은 이런 얘기도 했다. “대통령은 토론을 통해 의사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일대일로 일을 시킨
다음 어느 한편을 들어주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나름 열심히 일한 사람 입장에서는 이른바 언론사 표현대로 ‘물 먹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게
반복되면 상처가 되고 나중엔 좌절, 모욕감까지 느끼게 된다. 진 장관도 무언가 내부 소통에 한계를 느끼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 만나는 오피니언 리더들 중에는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창조경제’를 외치지만 ‘창조정치’, ‘창조행정’은 안
되고 있다. 총리는 물론이고 장관도 국회의원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한 사람만 보인다”며 이런 경고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큰 나라다. 혼자 끌고 갈 수 없다. 권한의 위임과 책임, 동기 부여, 조율, 팀플레이, 견제와 균형 등 고도의
정밀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비서실을 앞세운 ‘상명하복 통치’는 복지부동과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뿐이다. 의사 결정 방식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없으면 ‘제2의 진영’은 또 나온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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