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자의 눈] 가공하고 담합한 기사가 독자에게 통할까

발행일: 2007-01-18  /  기고자: 허문명
면종: 오피니언·인물
 

복지 분야 담당 데스크로서 15일 건강증진계획 기사를 보내 온 복지부 출입 기자와 잠시 실랑이를 벌였다. “정책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에 공무원들에게 일일이 취재를 한 기자는 “(공무원들도) 시행에 필요한 재원 마련 계획이 아직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상의 끝에 ‘발표를 중심으로 하되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쓰기로 했다. 이처럼 기사가 나가기까지에는 현장 기자가 보내 온 기사를 검토하는 과정이 있다.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하는 대로 신문에 실리는 게 아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독자들이 똑똑한 시대에는 발표 자료를 그대로 쓰면 기자가 공무원과 ‘담합했다’고 의심한다. 불충분한 사실을 주어진 시간 내 확인하고 넣는 ‘공정’은 때로 ‘전투’에 비유할 만큼 피를 말린다.


김병준 대통령정책특보는 17일 BBS(불교방송)와의 인터뷰에서 ‘논조’ 운운하며 기자와 편집진이 기사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 가공한다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을 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논조가 있다면 그것의 결정권자는 독자다. 독자를 외면하는 매체는 시장이 외면한다. 시장이 외면하는 매체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기자에게 독자란 영업사원에게 고객, 정치인에게 유권자와 똑같다. 언론 현장에 ‘독자의 취향만 중시하는 아첨꾼밖에 없다’고 꾸짖는다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지만 ‘담합’이니 ‘가공’이니 하는 말은 동의할 수 없다. 더구나 요즘은 누구나 아는 것을 전하는 ‘시민기자’ 시대가 아닌가. TV에 나와 거짓말했다가도 바로 들통 나는 세상이다. 몇 명의 기자가 손바닥으로 세상을 가릴 수 있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보도통제가 돌던 암흑 같은 시절에도 기자들은 정부가 주문한 ‘담합’을 깨 가며 금지된 소식들을 어떤 식으로든 알리려 애썼고 독자들은 그 행간을 읽어 가며 바깥세상과 소통했다.


‘노무현 개혁’의 특징은 자기편을 등져 왔다는 것이다. 그는 17일 ‘(담합 발언을) 너그럽게 봐 달라’고 했지만 16일 복지 담당 기자들이 낸 성명은 한때 그에게 우호적이었던 기자들까지 한목소리가 되어 그를 등졌음을 보여 준다. 말 한마디 사과로 넘어갈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그의 개헌 주장이 ‘이불 속 독립운동’처럼 비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허문명 교육생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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