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호 기자통신의 표지를 장식한 인물은 동아일보 시경 캡 허문명 기자였다.
흔한(?) 남(男)기자가 아니었기에 기자들 사이엔 꽤나 큰 뉴스거리였고 나 역시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기자뿐만 아니다. 우리사회는 아직도 남성이 하면 주목받지 못할 일이 여성이 하면 사회면을 장식할만한 뉴스가 되는 게 많다. 여성 장군, 여성 파일럿, 여성 경찰서장….
기자 앞에 ‘여’라는 한 글자를 달고 사는 기자들 역시 다른 여성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남(男)기자들보다 어려움이 더 많다.
취재원 대부분이 남성인 출입처에서 여기자라고 반색을 하면 괜시리 의심부터 든다. 선배들과 술자리에서 진한 농담도 대수롭지 않은 듯 받아넘기고, 피하고 싶고 따지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오직 기자로만 봐 달라고 말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질까봐 입을 다물기도 한다.
수습 때의 일이다. 남성 차 배달원인 이른바 ‘남봉’에 대한 취재지시가 내려진 적이 있다.
직접 차 배달을 시켜보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다 결국 여관으로 결정했다. 난생 처음 들어서는 여관방으로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아 취재를 못하겠다는 말을 했다가 한 남자선배에게 호되게 혼난 적이 있다.
그따위로 할라치면 기자를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오기로 취재를 했고, 그렇게 한 취재 결과는 다음날 사회면에 박스기사로 성과를 거뒀다.
취재만 하고 끝냈느냐는 선배들의 장난기 어린 질문에 ‘글쎄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져 의혹(?)을 사기도 한 나에게 ‘남봉 취재’는 기자와 여성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다 ‘기자’라는 직업정신과 ‘남자선배 대동’이라는 취재요령을 동시에 터득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요즘 광주 언론계는 시끄럽다. 열심히 기사를 쓴 죄밖에 없는 선배들이 어쩔 수 없이 취재수첩을 접는가 하면, 몇몇 부도덕한 기자들 때문에 기자집단이 매도 당하기도 한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은 넉넉치 못한 월급봉투나, ‘너도나도 기자’인 시대에 땅에 떨어져버린 기자의 권위보다 ‘언론인도 샐러리맨일 뿐’이라는 선배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와 조금씩 무너지는 기자로서의 자부심이다.
시간이 좀 지났으나 화제를 모았던 여성 캡의 이야기가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는 그런 선배들 역시 나 같은 기자 초년병의 고뇌를 극복했을 것이고, 여기자가 아닌 프로로서 당당히 섰기 때문이다.
기자로서의 삶을 택한 것에 추호도 후회가 없길 바라는 맘은 오늘도 취재수첩과 기사로 한줄 한줄 채워나간다. ‘기자’와 ‘여기자’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으랴. 성(姓)이 여씨인 사람 또는 성별이 여성인 사람에게 붙는 접두어에 불과할 뿐.
홍선희 광주타임스 사회부 기자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①] “비효율이 비도덕이다” | 2020-12-03 |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②] “정신 안 차리면 구한말 온다” | 2020-12-03 |
[기자협회보 / 기자칼럼] ‘기자’와 ‘여기자’ | 2002-02-20 |
[기자협회보] 기협 부회장 인선 완료 | 2001-12-28 |
문화콘텐츠 산업이 뜬다… CT펀드 설명회 열기 고조 | 2001-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