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간과한 발목 잡기인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위배한 비윤리적 시술이었나.” 황우석(黃禹錫) 서울대 석좌교수팀을 둘러싼 생명윤리 논란의 핵심은 여성 연구원 2명의 난자 기증이 순수하게 자발적인 것이었는지 여부다. 그런데 이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변수는 동서양 간 문화 차이다. 서구 과학계에선 ‘팀장과 연구원의 관계’에서 자발적 기증이란 있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반면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채 서구 과학계와 국내 일각에서 과도하게 황 교수를 공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
▽ 헬싱키 선언 위반인가=서구 과학계에서는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과학연구의 윤리원칙인 ‘헬싱키 선언’ 위반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1964년 제정된 이 선언은 “시험 수행에 대한 동의를 얻을 때 의사는 피험자가 자기에게 어떤 기대를 거는 관계가 아닌지, 또는 그 동의가 어떤 강제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만일 그러한 경우라면 그 연구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의사가 (피험자의) 동의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규정 자체만으로는 황 교수팀이 이 선언을 위반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서구 과학계는 “연구원들이 ‘어떤 기대’나 강요 없이 난자를 기증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해석해 왔다. 팀장과 팀원 간의 관계를 계약관계로만 여기는 서구적 문화에선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발적 기증’이란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동양적 가치관을 무시한 비판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적 정서로 볼 때 난치병 치료 연구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에서, 혹은 소속된 팀의 발전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며 난자를 기증하는 경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같은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채 ‘대가성이 있는 기증’으로 결론짓는 것은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조성택(趙性澤·철학) 교수는 “계약과 약자 보호를 중시하는 서구적 윤리 기준과 인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동양적 윤리관이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세계적 기준을 지키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서양의 윤리 기준만 맹목적으로 절대시해 우리 스스로를 지나치게 깎아내릴 필요는 없으며, 동서양의 문화적 윤리적 차이를 국제사회에 이해시키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위야 어찌됐든 국제 과학 윤리를 어겼기 때문에 황 교수가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인제대 강신익(姜信益·의사윤리학) 교수는 “선진국 과학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얻으려 해선 안 된다”면서 “우리의 특수한 관행이라고 그냥 넘어가는 것도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적 정서를 넘어 인류 전체를 향해=이번 일을 계기로 줄기세포 연구를 비롯해 우리가 세계 선두를 달리는 분야에서 과도한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시각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기준에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 교수는 “황 교수가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말한 것은 너무 국수주의적인 발언이었고 불필요하게 외국 과학자들을 자극한 면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卜鉅一) 씨는 “황 교수의 연구 업적은 한 민족의 차원에 머무르기엔 너무 커졌다”며 “어쩌면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는 난자 기증 문제를 세계 과학계에서 이슈화하는 것은 그만큼 황 교수가 외로운 연구를 해 왔다는 증거다. 세계무대에서는 외로운 도전이 손해일 수 있으므로 이 시점에서 열린 마음으로 선진국 과학자들과 연대해 공조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서울大 기관윤리위원장이 밝힌 ‘난자 기증’ 전말
황우석 교수팀의 ‘난자 의혹’을 조사해 온 서울대 수의대 기관윤리심사위원회(IRB) 이영순(李榮純) 위원장에 따르면 황 교수가 연구원의 난자 기증을 직접 확인한 것은 2004년 5월이며, 이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린 것은 줄기세포 연구 초기 시점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난자를 기증한 여성은 현재 모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인 K 씨와 미국 유학 중인 P 연구원.
이 위원장은 “K 씨에게는 이런 사실을 전화통화로 확인하고 진술서를 받았으며, P 씨는 난자 기증 사실을 시인했으나 전화통화 후 연락이 두절돼 진술서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IRB 조사 결과에 따르면 두 여성 연구원은 2003년 줄기세포 연구에 필요한 난자가 부족한 것을 알고 난자기증 의사를 황 교수에게 전했다고 한다.
당시 황 교수는 “너희가 그래서는 안 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하자”며 만류했지만 두 연구원은 난자 기증을 ‘좋은 일’로 생각해 황 교수에게 알리지 않은 채 미즈메디병원에 가서 난자를 채취했다는 것.
이들은 난자 채취 과정에서 가명을 사용했다.
이 위원장은 “황 교수가 ‘당시 두 연구원이 혹시 난자를 제공하지 않았을까 어렴풋이 생각했다’고 밝혔다”며 “하지만 황 교수는 만류했으므로 이들이 진짜 난자를 채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가 지난해 5월 여성 연구원의 난자 제공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이 위원장은 “여성 연구원들은 ‘네이처’ 기자와 인터뷰할 때만 해도 난자 기증이 ‘미담(美談)’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이 사실이 보도되면서 국제적인 논란이 일자 깜짝 놀라게 됐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네이처’ 보도를 접한 후 지난해 5월 말 연구원들에게 난자 기증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이 위원장은 “당시 두 연구원은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가 있는 어머니인데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하다고 황 교수에게 말했다”면서 “이들은 ‘난자 기증 사실을 없던 것으로 해 달라’고 황 교수에게 강력히 요청했다”고 밝혔다.
당시 연구원들은 “가명으로 기증했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황 교수에게 비밀유지를 부탁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황 교수는 국제적으로 거짓말을 한 꼴이 돼 갈등했다”며 “하지만 두 연구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난자 기증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 차원에서 지금까지 이 사실을 부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MBC 내부서도 지적 “업적 자체 부정하는 뉘앙스가 문제”
MBC가 22일 논란 속에 방영한 ‘PD수첩’의 ‘황우석 신화의 난자’편 시청률이 낮게 나온 데다 비판 여론이 쏟아져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날 ‘PD수첩’ 시청률은 4.8%(AGB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를 기록해 올해 이 프로그램 평균시청률 7.3%보다 낮았다.
MBC 내부의 의견도 엇갈렸다. 23일 오전 열린 임원회의에서는 “예상보다 부정적 여론이 덜한 편”이라고 안도하면서도 황 교수의 입장 발표가 사태 해결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간부는 “황 교수 연구의 윤리적 문제 해결을 공론화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PD수첩’과 인터뷰한 ‘네이처’의 기자나 여러 전문가의 코멘트가 마치 황 교수의 업적 자체를 부정하는 뉘앙스를 풍긴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간부는 “MBC가 황 교수 발목을 잡는 것으로 비쳐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하락할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PD수첩’ 인터넷 게시판에는 방송이 예고된 22일부터 1만2500여 건(23일 오후 9시 현재)의 댓글이 게시됐는데 이 중 90% 이상이 MBC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누리꾼 최영준 씨는 “황 교수팀이 파렴치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서구의 도덕 기준 잣대를 들이대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최민웅 씨는 “외국에서 (황 교수의 연구 성과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시점에 시청률을 올리는 소재로 활용하자고 생각했다면 눈앞의 이익에만 치중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PD수첩’의 지적이 적절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윤은익 씨는 “초기에 윤리적 논란을 짚어 보고 난자 확보의 어려움을 알려 황 교수가 좀 더 투명하고 안정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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