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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스님 100일재…제자 신도들 뜻깊은 추모식

발행일: 2005-03-12  /  기고자: 허문명
면종: SH 섹션면
9일은 숭산(崇山) 스님 열반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숭산 스님이 생전에 조실로 있던 서울 강북구 수유동 화계사는 이날 아침 일찍부터 어수선했다. 동안거가 끝난 뒤 화계사와 계룡산 무상사 국제선원을 떠나 있던 숭산 스님의 외국인 제자 스님들도 속속 도착했고, 신도들도 모여들었다. 이날 100재(齋)에는 70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해 12월 4일 수덕사에서 열렸던 다비식에 1만여 명이 참석한 것이나 올 1월 16일에 열렸던 49재에 5000여 명이 참석했던 것에 비하면 적은 인원이지만, 절 측에서 외부에 행사를 알리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많은 사람이 모인 셈이다.


오전 10시 반 대적광전 대법당 한가운데에 숭산 스님의 대형 영정을 배경으로 조촐하게 차려진 잿상 앞에서 제자들과 신도들이 향을 피우고 국화꽃 한 송이를 놓는 식으로 추모행사가 진행됐다.


화계사 주지 성광 스님은 “큰스님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마음으로 100일을 꼽아 온 사람들만 참석하도록 하는 것이 뜻 깊다고 생각해 알리지 않았다. 다비식과 49재는 서울과 수덕사로 전 세계 납자들이 모였지만, 이날 추모는 전 세계 젠(Zen·禪)센터에서 한날한시에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행사를 갖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도 역시, 숭산 스님 열반 이후 부쩍 주목받았던 외국인 스님 20여 명의 모습이 보였다. 무상사 주지 무심(미국) 스님을 비롯해 오광(유고) 현문(폴란드) 스님 사이로 최근 무상사 조실로 추대된 대봉(57) 스님도 보였다. 숭산 스님의 외국인 제자들 중 맏상좌 격인 대봉 스님은 스승의 열반 이후 말을 극도로 아껴 왔다. 이날도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대화에 응했다.


대봉 스님은 큰스님 열반 이후 국제선원 분위기에 대해 “계실 때보다 더 열심히 수행하자며 서로 격려하고 북돋워줘 이번 동안거 결제가 특히 엄숙하고 진지하게 진행되었다”고 말했다.


2002년 개원한 무상사의 불사 등을 주관했던 대봉 스님은 과로로 건강이 악화돼 미국에 갔다가 2003년 말 귀국, 자신의 건강이 채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1년여 동안 스승의 곁을 지켰다. 대봉 스님은 “함께한 마지막 1년여의 시간이야말로 30여 년 동안 스승께 배운 가르침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큰스님은 한 번도 ‘힘들다’ ‘아프다’며 찡그리거나 신경질을 내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보다 표정이 더 맑고 밝아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실려 갈 때 ‘디스 이즈 디피컬트 잡(This is difficult job)’이라면서 딱 한 번 힘들어하는 표정을 보인 적이 있어요.”

대봉 스님은 “사람이란 무릇, 병들어 고통 받을 때 가장 약해지기 마련인데, 스승은 그것조차 그저 ‘어려운 일’ 정도로만 받아들였다”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선(禪)의 길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30여 분에 걸친 간단한 추모행사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서둘러 제 갈 길로 향했다. 그러나 이승을 떠나 모습은 볼 수 없으나 영원히 살아있는 큰스님에 대한 추억을 가슴 속에 묻은 때문인지 모두들 밝은 표정이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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