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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 예술혼들의 삶과 예술] <상> 황혼서 깨운 나의 끼 이젠 그 끼를 그리고 싶다

발행일: 2004-05-03  /  기고자: 허문명
면종: SH 섹션면
《최근 중년 노년층을 중심으로 그림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단순한 배우기를 벗어나 자기세계를 구축한 만학 예술혼들의 삶과 예술 이야기를 들어본다. 아울러 그림을 배우고자 하는 중장년을 위한 정보도 제공한다.》


전업화가이자 서울 송파구 오금동 황진현미술관장인 황진현옹(75)은 나이 오십에 당시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화업의 길로 들어섰다. 엘리트 관료였던 그는 마흔 살에 스트레스 해소책으로 그림배우기를 시작하면서 결국 인생행로까지 바꿨다.


전직 관료에 학연 지연이 없다보니 독학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20여 년 간 그린 1500여점의 그림을 소장하고 전시하기 위해 최근 자신의 이름을 붙인 미술관을 세우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지난달 자신의 미술관에서 본격적인 전시를 시작해 5월20일까지 ‘바다’, 6월20일까지 ‘시장’을 주제로 개관전을 열고 있다.


고희를 훨씬 넘긴 나이, 게다가 오래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고 젊은 얼굴의 그는 “그림을 통해 얻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뒤늦은 만학의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올해 여든넷의 정원훈 옹은 요즘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으로 바쁘다. 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그는 70년대부터 그려 온 그림 60여점을 선보인다.


LA 한미은행장, LA 세한은행장등을 지내며 일흔 넘어서까지 현역 은행인으로 활동했던 그는 모든 일을 그만 둔 10여 년 전부터 미술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70년대 중반 도미직후 이국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단과대학 회화과에 입학한 것이 그림과의 인연이 됐다.


전시장은 주로 세계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풍물과 꽃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의 성품대로 밝고 활기차다.


49세의 주부작가 윤기연씨에게선 세칭 말하는 ‘갱년기 주부 우울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간호대학을 나온 후 병원에서 근무하다 외국계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20여 년 간 직장생활을 해왔다. 그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에 다니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림을 그려왔다. 첫아이가 초등학생 이던 시절 과외 미술교사로부터 그림을 배울 때 아들과 함께 그리기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


몇 년 전 직장을 그만두면서 작업에만 몰두해 온 그는 3월 생애 첫 개인전을 서울 인사동 화랑에서 열었다. 여백 한켠에 흡사 몬드리안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색과 형태는 그가 밥상보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하루 일을 끝내고 가족들이 돌아와 밥상을 마주 대하는 시간을 생각하면서 그렸다는 그의 그림은 따뜻하고 밝은 모성적 에너지가 가득하다.


3월 서울 인사동에서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연 윤길영 동성제약 상무(56)는 생활과 예술의 길을 병행하고 있는 경우다.


중고교 시절부터 수채화를 그려온 그는 홍익대 미대에서 도자기를 전공했지만 그림과는 동떨어진 생업의 현장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전시에서 우리의 자연과 산하를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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