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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넘긴 두 「중령할아버지」 오대봉 장봉훈 옹 정부청사서 힘찬 빗질

발행일: 1992-12-27  /  기고자: 허문명
면종: 사회
 

◎청소부로 「제3의 인생」/“은퇴 후 놀고 먹자니 몸이 근질”/고령자 재취업 연수받고 「새삶」/


“「10시간 노동­퇴근길 소주한잔」살맛나요”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의 청소일을 맡고 있는 오대봉(63) 장봉훈씨(61)는 동료청소원들 사이에서 「국군할아버지」로 통한다. 환갑을 넘긴 이들이 각각 공군과 육군에서 중령으로 예편하기 전까지 청춘을 바친 곳이 다름 아닌 사선을 넘나들던 전장과 군부대였기 때문이다.


「오대봉,49년 공군사령부 입대,54년 공군간부후보 과정수료,중령으로 재직하던 76년 47세로 제대,52,53년 화랑무공훈장,66년 국방부장관 표창」


「장봉훈,50년 학도병으로 6·25참전, 간부후보생으로 추천받아 52년 소위임관,67∼68년 월남전 참전,73년 중령예편」

이같은 젊은날의 이력에도 불구,이들이 「청소부」로서의 「제3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9월.


「집에서 놀고 먹기에는 아직 젊다는 생각」에 일거리를 찾던 이들에게 노동부 산하 산업인력관리공단이 주최한 「고령자(55세이상) 재취업을 위한 연수교육」은 무료한 노년의 삶에 새로운 의욕을 불어넣어주었다는 것.


『팔뚝에 힘이 넘치는데 놀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퇴역후 경영하던 오퍼상도 그만두고 집에서 놀자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요』(오씨)

『73년 당시 중령월급이 고작 7만원이었습니다. 살기가 어려워 예편한뒤 몇몇 건설업체에서 일했죠. 일선에서 물러나 하는 일 없이 있으려니 사는 재미가 없더군요』(장씨)

교육을 마친 뒤 곧바로 인력용역업체인 (주)우지기업에 입사한 이들에게 주어진 첫 임무가 바로 종합청사 청소업무.


이들은 청소일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이왕이면 남들이 기피하는 직종에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청춘을 조국에 바친 참군인의 자세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말한다. 첫 출근은 지난 10월6일부터였다. 매일 새벽6시반경 출근부에 도장을 찍는 것으로 시작되어 이들의 하루는 오후 4시까지 청사주변의 쓰레기줍기 유리창닦기 등으로 눈 코 뜰새없이 바쁘게 이어진다.


처음엔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였던 동료들과의 거리도 「퇴근길 소주한잔」과 「솔선수범」으로 메우고 있다는 이들은 두달째 이어지는 청소 일을 통해 귀중한 체험과 함께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고 전한다.


첫번째는 도시영세민의 생활이 얼마나 어렵고 각박한 것인가를 알게 됐다는 것. 『우리나라에 아직도 이렇게 고달픈 사람들이 있나 할 정도였어요. 특히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동료 아주머니를 볼때는 안쓰러울 때가 많지요』

장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청소원들에게 지급되는 월급이 여자 23만5천원,남자 32만원으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라고 동료들의 어려움을 대신 호소했다.


이들은 다행히 월 1백20만원씩 지급되는 연금덕택에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하고 있지만 청소일로 가족의 생계를 떠맡고 있는 동료들의 입장은 딱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할 것으로 관공서의 물자낭비가 너무 심하다는 것.


하루 70여개의 부대가 부족할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수집하게 되는데 「거의 반은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라는 것이다.


몇줄 쓰지도 않은 새하얀 종이들이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쓸만한 책상 캐비닛 등 비품이 창고에 가득 쌓인 모습을 보면 이면지를 사용해 빽빽이 보고서를 작성했던 배고팠던 50∼70년대 군복무 시절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청소일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까지 달라졌다고 말하는 이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빗자루를 거머쥔 두 사람의 어깨위로 새벽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허문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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