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대만 두 어린이-한국 119구조대, 국경넘은 '릴레이 사랑'

발행일: 2001-06-25  /  기고자: 허문명
면종: SH 섹션면
대만의 두 소년과 한국 119구조대를 중심으로 두 나라를 잇는 감동적인 휴먼스토리가 화제다. 이 이야기에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깔려있고 비록 나라는 달라도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이 흐르고 있다.‘지금까지 난 누구와도 싸워본 일이 없지만 앞으로 암 악마와 싸울 거예요. 싸워서 건강도 찾고 살아갈 권리도 찾을 거예요. 왜냐하면 난 아직 아홉 살이니까요.’


97년 1월 25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에 살던 저우다관(周大觀)군은 생전에 이렇게 다짐했지만 결국 소아 골수암으로 만 9년6개월을 살다 눈을 감았다. 소년 시인이기도 했던 저우군은 여섯 번의 화학치료와 서른 번의 방사선 치료, 두 차례의 대수술을 거쳤고 한쪽 다리를 잘라내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생에 대한 강한 의지와 밝음을 잃지 않는 많은 시를 남겨 대만인들을 감동시켰다.


이 소년의 투병기록과 생전에 남긴 시 42편은 책으로 묶여 대만의 베스트 셀러가 됐다. 부모는 인세수입으로 어린이 암 환자들을 돕는 ‘저우다관 문교기금회’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99년 9월 24일. 리히터 규모 7.3∼7.6의 강진이 대만 중부지역을 강타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이때 타이중(臺中)현 다리(大里) 왕차오(王朝) 아파트 붕괴현장에서 3박4일 동안 지하에 매몰돼 있다가 구조된 여섯 살배기 장징훙(張景宏)군의 생존 드라마가 대만 전역을 달궜다. 이 소년을 구해낸 사람들은 한국에서 긴급 파견된 119 구조대원 6명. 소년을 안고 나오는 한국 구조대원들에게 대만인들은 ‘한궈(韓國) 한궈’를 외치고 눈물을 흘리며 거수 경례를 했다.


지난달 8일 경기 남양주시 중앙 119구조대 앞으로 한 장의 팩스가 날아왔다. 보낸 측은 ‘저우다관 문교기금회’. 저우군의 책이 어린이날에 맞춰 한국에서 출판(‘내게는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된 것을 계기로 인세 일부를 한국 119구조대에 기부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119구조대는 ‘고맙지만 국가기관이라 받을 수 없으니 우리가 구해낸 대만의 장군에게 전해달라’는 뜻을 밝혔다.


당시 지진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장군은 그러나 정중하게 거절했다. ‘목숨을 구해준 한국인들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막막한데 다시 신세를 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정히 쓸 곳을 꼽는다면 한국의 어린이를 위해 쓰여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저우군 책의 인세는 한국의 ‘소아암백혈병 어린이 새생명지원센터’에 보내져 한국의 어린이 암환자들을 위해 쓰이게 됐다. 두 소년의 맑은 영혼이 한국 119 구조대원들을 매개로 국교마저 단절된 두 나라를 사랑으로 이은 것이다.


저우군 부모와 대만의 암환자 20여명은 한국의 새생명지원센터에 인세의 20%를 기부한다는 내용의 증서를 전달하고 119구조대원들도 만나기 위해 24일 내한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목록

댓글 0개 / 답변글 0

댓글쓰기

‘ 기사 ’의 다른 글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①] “비효율이 비도덕이다” 2020-12-03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②] “정신 안 차리면 구한말 온다” 2020-12-03
대만 두 어린이-한국 119구조대, 국경넘은 '릴레이 사랑' 2001-06-25
대우차 폭력진압 배경 / 갑자기 거칠어진 경찰 왜? 2001-04-14
정부, 화염병 시위와 전면전… 고무 충격총 사용방침 2001-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