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사업과 코스닥으로 떼돈을 번 20∼30대 청년재벌들이 등장하는 한쪽에서는 저금리에 의존하는 50대 60대 퇴직자들의 생활기반이 무너져 세대간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인터넷에 서툴고 모험심이나 창의력이 부족한 고령층이 이 분야의 창업을 통한 부의 창출에서 어쩔 수 없이 소외된 결과로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기관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벤처업체인 H사 사장실 여비서 김모씨(20)는 10억원대 자산가. 여상을 졸업하고 입사한 뒤 우리사주로 받은 주식이 코스닥에 등록되면서 억대 재산을 갖게 됐다.
벤처업체들이 밀집한 서울 강남 테헤란로 고급룸살롱 주인들은 “요즘 젊은 피가 수혈됐다”고 즐거워한다. ‘젊은 피’들은 과거 졸부 부모를 가진 오렌지족이 아니라 자수성가한 30대 벤처사업가나 주식투자로 돈을 번 사람들로 이들은 하루 술값으로 수백만원을 쓰는 게 보통이다.
삼성물산이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지은 사이버 아파트 ‘리버스위트’는 한강이 내다보이고 광케이블이 설치된 최첨단 아파트. 작년 말 분양이 끝난 이 아파트에 20∼30대 젊은층들이 대거 몰려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현장 관계자는 “평당 분양가가 1400만원으로 가구당 5억∼12억원을 호가하는 고급아파트여서 고령층이 몰릴 줄 알았으나 의외였다”며 “한꺼번에 목돈을 가져오는 이들은 대부분 주식투자나 벤처사업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이에 비해 50∼60대는 사정이 판이하다. IMF위기를 전후해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휘말려 직장에서 밀려난 뒤 퇴직금도 대부분 은행 저금리에 의존하고 있어 생활기반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도 디지털 시대에 새 희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30여년간 일해 온 교직을 2년전 명예퇴임한 이모씨(58·서울 서대문구)는 2억원이 넘는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아 금융기관에 예치했다가 금리가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곤란을 겪고 있다.
할 수 없이 원금을 찾아쓰다 보니 2년간 5000만원을 까먹었다. 별다른 직업없이 대학생 1명과 고등학생 2명의 학비조달과 생활비때문에 집안살림은 점점 더 쪼들리고 건강도 나빠져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은 상태다.
주식시장이나 창업에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고 실패에 대한 공포감으로 엄두조차 못내는 실정이다.
중견기업 부장으로 있다가 명예퇴직 한 박모씨(55)는 2억여원의 퇴직금 중에서 5000만원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벌써 2000여만원 이상을 까먹었다. 박씨는 “요즘 주가는 기업 재무제표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묻지마 투자’인데다 정보통신 인터넷주가 장세를 끌어가고 있어 제조업이 최고라는 옛날 사고방식을 가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적응이 안 된다”며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단기매매도 하면서 돈을 벌지만 컴맹인 우리들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한국전산원이 98년 4월 한달 동안 인터넷 웹사이트 사용자 5만여명을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20대(21∼29)가 60%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31∼35세가 15.5%, 20세이하는 11%였으며 36세이상은 13.5%에 불과했다.
한국산업투자자문의 박병택 이사는 “요즘 창업은 정보통신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는데 대부분 30대로 50∼60대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조영빈 과장은 “디지털 시대 기업의 부를 창출해내는 원천은 물리적 재화가 아닌 정보재”라며 “정보소외 세대는 불가피하게 부의 창출에도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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